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업 액션영화에서 수위 높은 잔인한 장면을 보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점점 ‘리얼’한 액션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신체가 잘려나가고 유혈이 낭자하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라도 부모나 10대 초반의 학생들과 함께 보기에 괜찮을지 걱정이 앞서는게 사실입니다. 교섭의 임순례 감독이 고민하는 지점도 이와 같습니다. ‘리틀 포레스트’(2018)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임 감독은 “영화를 보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관객 입장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교섭을 연출하면서 주력한 부분에 대해 “일단 사람을 많이 죽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총을 쏘거나 사람을 죽일 때 이유가 있는 액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섭은 2007년 한국 교인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된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입니다. ‘이론파’인 외교부 실장 정재호(황정민 분)와 ‘실전파’인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이 삐걱대면서도 함께 손을 잡고 인질을 구하는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연신 부딪히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결국 대의 앞에 힘을 모으는, 자칫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우려를 안고 영화를 봤는데, 괜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황정민과 현빈의 브로맨스’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디테일에서 어색함이 드러납니다. 예컨대 누가 보더라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박대식이 “이제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자, 정재호는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좀 해보자”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대식은 대뜸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며 재호의 멱살을 잡고, 두 사람은 한 바탕 붙습니다. 관객으로선 갑자기 왜 싸우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갈등을 빚던 남자들이 우정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려는건 알겠는데, 갈등을 빚는 이유가 빈약해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캐릭터도 아쉽습니다. 영화 속 정재호와 박대식은 ‘깡다구’가 좋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진 않습니다.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멋진 수염으로 마초 냄새를 물씬 풍기는 대식입니다. 대식은 세평도 좋지 않고 다혈질이지만, 현지 사정에 밝고 직감을 따르는 국정원 요원입니다. 이런 유형의 캐릭터는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유능함을 뽐내야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빈은 전투 능력을 제외하면 정보원으로서는 무능한 편에 가깝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도 투철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현빈의 필모그래피에서 교섭의 박대식이 ‘인생캐’가 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정재호도 다소 아쉽습니다. 재호는 외교부 실장으로서 피랍된 자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합니다. 황정민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대의를 위해 상관도 들이받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황정민은 교섭에서 처음 보는게 아닙니다.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감동을 줘야 하는데, 그나마 힘을 실은 대사는 예고편에서 이미 봤던 것이라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