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원전, 강남과 용산에 세웁시다.”
정부가 최근 공개한 원자력발전소 홍보 영상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을 축약한 문장입니다. 문제의 영상은 공개 8일 만에 유튜브에서만 26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크게 확산됐습니다.
지난 9일 한국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과 SNS에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라는 제목의 짧은 국정 홍보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한석봉이 어둠 속에서 붓으로 글을 쓴 일화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밤중에 호랑이에게 떡을 빼앗긴 어머니가 성을 내며 집에 도착했는데, 아들은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난 떡을 썰테니 넌 글을 쓰거라”라고 합니다. 글의 주제는 “호랑이가 안 나타나도록 밤거리를 밤새 밝혀도 걱정 없을 에너지”입니다. 잠시 소등한 뒤 불을 켜보니 어머니는 되레 엉망진창으로 떡을 썰었고, 아들의 화선지에는 똑바른 필체로 ‘원자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자력이라는 글자는 푸른색으로 빛납니다. 이후 “국정과제 세 번째, 원자력 생태계 강화”, “참 든든한 에너지입니다. 와~ 강력하다” 등 대사로 영상은 마무리됩니다.
이 원전 홍보 영상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며 조회수가 급등했습니다. 지난 15일에는 170만 회를 넘었고, 17일 오후 5시 현재 270만 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SNS에선 주로 황당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방사능 유출 사고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원전 홍보 영상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원자력’이라는 글자가 푸른색으로 빛나는 장면은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체렌코프 효과’를 연상시킵니다.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 시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푸른빛을 대기 중에서 봤다면, 매우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된 것이므로 대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상에 등장하는 모자는 끔찍한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고 있는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무지가 드러난다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유튜브에서는 지방에 쏠린 원전의 입지를 두고도 날선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1000개가 넘는 댓글 중 “서울만을 위한 원자력 발전소 설립! 한강변 수원이 풍부한 강남구, 용산구 적극 추천!”이라는 비아냥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다른 댓글들도 비슷합니다. 한 누리꾼은 “고리원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다”며 “이 좋은 것을 우리만 향유하려니 조금 미안하다. 서울 한강 부지에 건설하면 되겠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러자 “북한과 전쟁 나면 서울부터 미사일을 쏠 텐데 다 같이 자폭하자는 얘기냐”고 반박하는 누리꾼도 보입니다. 수도권 중심적인 사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댓글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원전과 같은 주요 에너지 시설은 제1의 표적이 됩니다. 고리원전을 끼고 있는 부울경 시민들은 바로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원전 안에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까지 짓기로 해 지역민의 우려와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가 국정과제 홍보문구로 내세우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라는 말도 견강부회로 느껴집니다. 생태학에서 ‘생태계’(生態系)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상호 작용’입니다. 생태계를 강화하고 복원하려면 무생물적 환경 조건은 물론이고 생물과 생물, 생물과 무생물 간의 상호관계도 복원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원자력 생태계’ 강화엔 지역과 수도권의 상호 관계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원전 협력업체 지원’과 같은 산업적 대책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기브 앤 테이크’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원전 밀집지역을 떠안은 부울경에게 적절한 대우나 보완책도 없이 또 다른 짐을 지우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지역과 수도권이 상생할 수 있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 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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