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일’은 연인과 사별한 후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방치한 끝에 272kg에 달하는 거구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 분)는 자신의 제자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버린 대학 강사입니다. 그러나 연인은 얼마 못가 죽었고, 신경성 폭식증으로 체중이 엄청나게 불어난 찰리는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갑니다. 온라인으로 대학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치는 그는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결국 찰리는 간호사 친구 리즈(홍 차우 분)로부터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지만, 건강 보험이 없다는 핑계로 치료받기를 거부합니다. 일주일 뒤 죽게 된다는 리즈의 말에도 찰리는 아랑곳 않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 분)를 집에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면 전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엘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쏟아냅니다. 사실 엘리는 아빠가 자신을 버린 충격으로 인간을 증오하게 된 외톨이입니다. 찰리는 그런 엘리의 내면에 남아있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문제아 취급당하는 엘리를 “완벽한 딸”이라고 칭찬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주려 합니다.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더 웨일’은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과 사별의 아픔으로 자기혐오에 빠진 찰리, 절친한 친구 찰리가 죽음에 이를 것을 알면서도 음식을 가져다주는 리즈,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비뚤어진 엘리.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찰리, 리즈, 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연극이 원작이다 보니 인물들의 동선이나 대사에서 연극의 느낌이 납니다. 사랑과 솔직함, 구원에 관한 대사는 영화가 끝나고도 되새겨 볼만 합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아빠가 뒤늦게 용서를 구한다는 설정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관객 입장에선 찰리의 감정선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또 평소 가치관에 따라 영화의 메시지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억지감동을 강요하는 듯하다”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는 실관람평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평을 내놓는 관객들조차 브렌든 프레이저의 ‘인생연기’는 인정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영화 ‘미이라’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그는 이혼 후 위자료 폭탄, 우울증, 영화계 고위급 인사의 성폭력, 건강 문제 등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미권에서는 한때 안타까운 할리우드 스타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더 웨일’에서 프레이저가 보여주는 처연한 눈빛 연기는 이러한 삶의 애환이 담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찰리의 눈동자에는 딸에 대한 사랑과 함께 과거에 대한 후회와 성찰, 목숨마저 포기한 절망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보철 분장'으로 만든 거구를 움직이는 몸짓도 자연스럽습니다. 프레이저와 합을 맞춘 세이디 싱크와 홍 차우의 연기 역시 대단합니다.
프레이저는 지난 1월 미국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 이어 지난달 미국배우조합(SAG)이 주최한 영화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연이어 거머쥐었습니다. 이달 개최 예정인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도 수상이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됩니다. ‘더 웨일’은 올해 아카데미서 남우주연상 외에도 여우조연상(홍 차우), 분장상 등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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