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소영과 동현은 서로를 의지하며 어찌저찌 잘 지내지만, 새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소영의 직장 동료 사이먼(앤서니 심)의 개입이 모자 간 불화를 일으킵니다. 동현과 삐걱거리던 소영은 몸까지 아파지자 아들과 함께 고향인 한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가족애, 이민자가 당하는 차별, 출신과 현실의 괴리로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냈습니다. 소영과 동현이 강원도를 찾은 시퀀스는 16mm 필름 카메라로 담아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따스한 촬영 현장 분위기도 이러한 연출에 한몫 했습니다. 강원도 현장에서 수준급 셰프인 심 감독의 친척들이 배우와 제작진에게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최승윤 배우는 “집밥을 먹으며 촬영하니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촬영할 맛이 나더라”면서 “영화 촬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용가 출신인 최승윤은 이번 작품이 장편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세심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신인 배우 최승윤이 주연으로 캐스팅 된 과정은 드라마틱했습니다. 심 감독은 오디션을 여러 차례 진행하고도 소영 역에 맞는 배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작품 연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쯤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의 캐스팅 감독이 “괜찮을 것 같은 배우가 딱 한 명 있다. 이 배우는 특별한 게 있다”며 추천한 배우가 최승윤이었습니다. 최승윤이 연기하는 영상을 보자마자 “완벽하다”고 생각한 심 감독은 즉시 만남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오디션을 봤는데 매번 이 사람(최승윤)과 이 역할(소영)은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승윤은 ‘연기 비결’을 묻는 말에는 “따로 전문 교육을 받지는 않아 연기 테크닉은 없다”면서도 “심 감독과 함께 연습과 리허설을 반복했다. 또 ‘동현’ 역 배우들과 실제로 시간을 보내며 친밀감을 형성했고, 이들을 아끼는 마음을 연기에 녹여냈다”고 답했습니다. 동현을 연기한 에단 황도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했습니다. 애초에 북미에서 활동하는 어린 한국 배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겨우 섭외한 배우가 에단이었는데, 심 감독은 이번엔 사진을 보자마자 “얘가 동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한인 이민자 2세인 에단은 동현이라는 캐릭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에단 역시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심 감독의 트레이닝 덕에 호연을 펼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배우 출신인 심 감독은 소영의 직장 동료인 ‘사이먼’을 연기했습니다. 심 감독은 “원래 내 작품에 배우로 등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원래 사이먼이 인도 남자였다. 대사도 미리 다 썼다”면서 “그런데 이야기에 잘 맞지 않는 설정인 것 같아 결국 한국 입양아 캐릭터로 바꿔 연기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심 감독은 “자라면서 본 영화에 나처럼 생긴 주인공은 별로 없었다. 있어도 쿵푸 영화였다”며 “한인 이민자 1세대의 노력 덕에 우리 세대부터는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나도 후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섬세한 연출과 짜임새 있는 각본, 신인 배우들의 명연기로 완성한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북미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플랫폼상을 받은데 이어, 지난달 10일에는 토론토영화비평가협회(TFCA)가 선정한 ‘2022 최고의 캐나다 영화’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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