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례 성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가지가 무성한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마당과 하얀색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은 셀프카페와 성물방으로 이뤄진 방문객센터인 ‘라우렌시오집’이다. 고목 너머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지는데 낙동강 자전거길 구간으로 유명한 명례생태공원이다. 바깥 기온은 38도를 오르내리지만 뜻밖에 명례 성지 안은 별로 덥지 않다. 고목 앞 벤치에 앉아 공원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선선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돈다. 두 눈을 감고 잠시 시원한 바람과 상큼한 공기를 음미한다. 마음은 평온하고 또 평온해지고, 차분하고 또 차분해지고, 경건하고 또 경건해진다.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고 특별한 느낌의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감정이라면, ‘라우렌시오집’에서 따뜻하거나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뽑아와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이 자리에서 서너 시간이라도 앉아 있을 것 같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엉덩이를 들고 다리를 겨우 움직여 ‘라우렌시오집’ 옆에 ‘천주교 성지-명례천주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정문으로 들어간다. 정문을 지나 길을 돌아서자 왼쪽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묘사한 조각상 12개와 성모 마리아의 하얀색 조각상이 세워진 성모동산이, 오른쪽으로는 방금 본 고목보다 더 크고 가지와 잎이 더 무성한 고목이 나타난다. 조각상을 천천히 둘러본 뒤 고목을 향해 걷는다. 아주 작지만 매우 깊고 단아한 분위기가 매혹적인 기와지붕 건물이 나타난다. 1896년에 지어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성모승천성당’이다. 지금 성당은 1936년 태풍 때 부서진 것을 2년 뒤 재건했다고 한다. ‘성모승천성당’ 내부는 우리나라 전통 시골 한옥 내부 벽을 허물고 서까래와 기둥 나무만 남겨놓은 형태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아 20명 정도가 겨우 앉을 면적이지만, 거기에 짙게 배인 순교자의 깊은 신심은 온 세상을 덮고도 남기에 충분하다. ‘성모승천성당’ 앞은 가리는 게 하나도 없어 고목 사이로 성모동산과 넓게 펼쳐진 명례생태공원, 낙동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당연히 이곳도 ‘라우렌시오집’ 앞의 정원만큼이나 시원하다. 도대체 이곳은 왜 이렇게 시원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