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에 가면 잊지 말고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우리나라 10대 정원이라는 멋진 중정을 가졌고 7~8월에는 주홍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로 유명한 영산암이다. 조그마하고 소박한 암자에 불과하지만 워낙 분위기가 안온하고 포근해서 영화 촬영 장소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영산암에 들어가려면 누구든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출입문인 우화루 아랫부분이 낮아 허리를 뻣뻣이 들면 머리를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이렇게 낮춘 것은 모두에게 겸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우화루 밖에서는 영산암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영산암은 건물 여섯 동이 사방을 에워싼 폐쇄형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우화루 아래로 고개를 숙여 들어가야 이 암자의 본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우화루 아래를 지나자마자 저절로 감탄이 터지게 만드는 고즈넉하면서 조용한 중정이 나타난다. 중정을 꾸민 장식이래야 소나무 한 그루와 배롱나무 한 그루, 그리고 작은 돌탑 하나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엄청난 화초를 심은 유럽 유명 궁전의 초대형 정원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봉정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고건축의 미학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한옥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담은 마당의 멋스러움에 넋을 빼앗기게 된다’라고 소개돼 있다.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배롱꽃은 제철을 맞아 활짝 피었다. 화사한 주홍색 꽃이 푸른 숲속에 숨겨진 검은 기와지붕의 전각과 오랜 친구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룬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신발을 벗고 우화루에 올라가 마루에 앉아 본다. 만세루만큼은 아니지만 미세한 바람이 안팎으로 불어오는 게 꽤 시원하다. 이곳은 숲속이라서 그늘도 꽤 많이 져 만세루보다 차분한 느낌이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전망이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마치 어릴 때 동네 뒷산에 숨겨진 ‘나만의 비밀공간’ 같은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만세루에 이어 우화루에서도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잠시나마 무더운 여름을 잊는다. 우화루에서의 휴식을 끝으로 봉정사에서 내려간다. 이곳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기후 위기 때문에 최근 수년간 제멋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올해 가을엔 한 번 가봐야겠다. 여름 봉정사와 가을 봉정사의 차이는 어떨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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