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대원사는 겨울 안거 기간 중이다. 비구니 스님 수십 명이 일심으로 불도를 닦는 ‘정진’에 들어간 시기다. 혼탁한 산 아래 세상과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곳곳에 흘러넘친다. 먼 길을 달린 자동차는 유평주차장에 세운다. 이곳에서는 걸어서 대원사까지 올라갈 작정이다. 발이 빠른 사람은 30분, 느린 사람은 1시간이면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을 감안했다. 전날 내린 눈이 쌓인 지리산 꼭대기는 하얀색으로 덮였다. 산행 길에 쌓인 눈은 지방자치단체의 발 빠른 조치 덕분에 일찌감치 정리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기온은 0도 안팎이지만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아 춥지도 않다. 초겨울이어서 단풍은 거의 다 진 상태지만 곳곳에 살아남은 새빨간 단풍나무는 아직 한겨울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산행 길에서는 가로등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늦은 밤에 도로를 오가는 행인이나 자동차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유평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는 고즈넉한 숲길이다. 가끔 대원사나 인근 마을로 오가는 자동차 외에 행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겨울이어서 산행객도 드물다. 모든 시선과 소음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분을 좋게 만든다. 대원사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계곡이 이어진다. 겨울인데도 물이 마르지 않아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이어진다. 마치 산행객이 외로울까 동행하는 느낌마저 준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물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대원사는 초대형 사찰은 아니지만 예쁘고 아담한 곳이다. 특히 템플 스테이로 유명한 사찰이다. 지금도 12월~내년 3월 사이에 ‘집중수행 선명상’ ‘지리산에서 하룻밤’ ‘까치까치 설날’ ‘나만을 위한 템플스테이’ 같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추억이 될 듯하다. 대원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 유평마을까지 가기로 한다. 길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유평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대원사 앞의 방장교를 건너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숲길을 따라 갈 수도 있고, 무장애 덱 탐방로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올라가 반대쪽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이번에도 동반자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다. 도중에 잘 익어 가는 대봉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곳곳에서 산행객을 유혹한다. 추워서 그런 것인지, 낯선 사람을 만나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대봉감 볼은 빨갛게 변했다. 대봉감처럼 산행객의 볼도 서서히 빨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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