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가다 부르크극장 앞 정류장에서 내린다. 트램이 달려온 도로는 꽤 넓은 데다 정비도 잘됐으며 상당히 고색창연해 보인다. 도로 이름은 링슈트라세다. 링은 ‘원형’이나 ‘반지’를, ‘슈트라세’는 거리를 뜻하는 단어이니 링슈트라세는 ‘원형 도로’라는 뜻이다. 도로가 빈 구시가지를 반지처럼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링슈트라세 자리는 원래 빈 성벽과 해자 그리고 경사지가 있던 곳이었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날로 인구가 늘던 도시 권역을 확장하기 위해 성벽을 허물고 해자를 메워 얻은 땅에 만든 도로가 링슈트라세였다. 정부는 새로 생긴 땅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 마련한 대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공공 건축물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공 건축물은 오페라하우스, 부르크극장, 국회의사당 등이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합스부르크 왕실이 오래 전부터 모아온 각종 유물, 미술품을 보관할 새 시설도 만들기로 했다. 미술품을 전시할 미술사박물관과 자연 수집품과 희귀품을 전시할 자연사박물관이었다. 당시 왕실에는 미술품은 물론 각종 희귀 물품과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동물, 식물, 광물 자료가 넘쳐났는데, 호프부르크궁전과 쇤브룬궁전, 벨베데레궁전 등 여러 곳에 나눠 보관 중이었다. 빈자연사박물관 공사가 먼저 마무리돼 1889년 8월 10일 개장식이 열렸다. 빈미술사박물관 개장식은 2년 뒤인 1891년 10월 17일 거행됐다. 이곳은 2개 층 88개 전시실로 이뤄졌다. 전시품은 고대 이집트, 청동기~중세 유물, 금 세공품 및 조각, 동전 그리고 미술에 이르기까지 크게 5개 주제로 구성된다. 큰 기대를 품고 들어간 미술사박물관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의 웅장함으로 초장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0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에워싼 구스타프 클림트, 한스 마라카트, 미하일리 뭉카시의 벽화와 천장화는 말문이 턱 막히게 만들 정도다. 빈미술사박물관 입구에서 오디오가이드 장비를 대여할 수도 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설명을 들어봐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다 미술품은 정형화된 틀 안에서보다는 상념 없이 가슴으로 보는 게 진정한 감상이라는 걸 여러 차례 미술관 기행에서 느꼈다. 이곳의 미술품 중에는 대작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다.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초원의 마돈나’, 같은 시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루돌프 2세 황제를 그렸다는 명작 ‘사계절’,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역작 ‘왕녀 마르게리타의 초상’ 등은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도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틴토레토 등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대가의 작품은 한두 개가 아니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던 도중 대가의 작품을 모작하는 노화가를 만났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열심히 그림을 베끼는 중이다. 그 모습이 흥미로운지 미술관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몰려 원작과 모작을 비교해보기도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데 이 노화가도 세상을 놀라게 할 창조적 작품을 내놓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