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ABS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센서 오작동이나 소프트웨어 버그 등 기술적 오류로 잘못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판정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현장의 선수들이 AI 판독의 정확성에 회의적이다. 투수마다 던지는 공의 높이, 탄도, 움직임이 제각각이라서다. 판독이 각도에 따라 다를 경우, 각도 하나 비틀어지면 그 경기의 모든 스트라이크 존은 달라진다.
AI 심판이 적용된 고교 야구를 지켜봤다는 김성근 감독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계가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니까 타자가 이를 악용한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거다. 투수는 하는 수 없이 한복판으로 슬슬 던져야 한다. 이러면 야구의 질이 떨어진다.”
ABS에서는 주심이 AI의 음성을 전달받아야 하니까 직접 판단할 때와 달리 약간의 시차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2스트라이크 3볼’에서 누상의 주자가 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뒤늦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날 경우, 주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볼 판정 시간이 지연되면 이뿐만 아니라 각종 상황에서 집중력과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야구의 묘미는 그때그때의 순간적 판단과 센스에 있는데, 그것이 반감되는 것이다. 주심의 개성 넘친 스트라이크 콜과 멋진 액션을 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심판의 판단이나 감정도 경기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논란이나 갈등까지 경기의 재미 중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AI 심판은 이런 인간미를 없앤다는 점에서 아쉽다.
AI 야구 심판 1군 리그 정식 도입. 결국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한국에게 돌아왔다. 고교 야구와 2군 경기의 시범 운용에서 ABS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게 KBO의 판단이다. 메이저리그는 트리플A에서 AI 심판을 적용한 결과 경기 진행 시간이 더 늘어나자 도입을 유보한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확정된 만큼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때부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열리면 ABS에 대한 여론이 어떤 식으로든 형성될 것이다. 새 제도에 대한 면밀한 체크와 함께 그에 걸맞은 재조정 작업도 필요에 따라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경기의 품질과 야구팬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요컨대, 한국 야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국 야구의 미래에 최선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진년은 한국 야구 변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향후 세계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주도할 역량도 여기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