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에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매력적이다. IT 보급이 잘 되어 있고, 물류 인프라가 뒷받침이 되는 시장이다. 게다가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층이 두텁다. 한국이 중국발 쇼핑 플랫폼 격전장이 된 까닭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수 시장의 침체, 누적된 재고를 떨어내야 하는 다급한 사정도 주요한 배경이다. 초저가, 무료 배송의 이면에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이용자를 늘리려는 전략이 있다. 1000원짜리 초저가 상품이라도 중국에서 한국까지 무료 배송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파격 할인과 쿠폰을 뿌리는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다.
해외 이커머스 앱에서 거래가 발생하면 관세, 통관, 물류비가 붙지 않는데다 전기 제품의 경우 안전·전자파 인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무임승차로 사업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내 소상공인들은 역차별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반발한다. 또 반품 불편이나 짝퉁, 위해 식품과 의약품,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매도 이미 사회 문제가 됐다. 정부가 뒤늦게 외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에 국내와 동일한 처벌 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국계 이커머스의 성장세를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중국 이커머스의 파상 공세에 한국 유통업계 어떻게 될까?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앞 상권을 들여다 보면 멀지 않은 미래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권 조사에 부산 표집 대상은 20곳인데, 이 중 부산대 앞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3년 4분기 27.2%로 상가 넷 중 하나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평균 7.9%에 비하면 3.5배 가량 폐점한 곳이 많다. 젊은층을 겨냥해 성업했던 옷가게, 잡화류 등 가게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젊은 층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기 때문이고, 알리와 테무의 등장으로 이커머스 쏠림이 심화된 탓이다.
최근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추세 속에 부산에서도 적용 사례가 나오려 하고 있다. 한데, 한국 인터넷 쇼핑몰과 부산대 앞 상권 침체 사례를 비춰볼 때 의무 휴업일 조정만으로 추세가 반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기지로 활용해 새벽 배송을 하고 싶어도 밤 사이 영업을 금지하는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족쇄를 차고 경쟁하는 꼴이다.
중국계 플랫폼이 한국 소비자 반응에 대응하는 속도를 보면 두려움마저 생긴다. 알리는 최근 환불·교환에 대한 국내 불만이 일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체제를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초저가뿐만 아니라 서비스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는 셈이다. 테무의 모기업 PDD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데, 자산 가치가 1년 새 50% 가까이 올라 1696억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25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거대 자본이 작정하고 물량전으로 밀고 들어오면 살아남을 국내 플랫폼이 있을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자칫하면 국내 유통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에 잠식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처럼 될 수 있다.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가 1000억 원대 적자를 내며 고전하는 사이 막대한 자금력과 콘텐츠를 앞세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이제 국산 드라마·영화 제작까지 주도하며 K콘텐츠를 쥐락펴락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유통 시장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이제 쇼핑에 국경은 없다. 초저가 상품을 좋은 서비스로 제공하는 곳에 몰리는 소비자를 탓할 수 없다. 시성비를 추구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을 붙잡으려면 손님 쟁탈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껏 한국 시장 안에서 안주하면서 가격·품질·서비스 혁신에 소홀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역차별 해소를 비롯해 일자리 보호나 유통 주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 완화 조치를 마련하는 등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부 대책이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목하 새로운 차원의 소비자 쟁탈전이 시작되고 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경쟁력이 관건이다. 한국 유통업계의 생존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때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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