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와 변화를 추구하다 보니, 도시들도 서로 닮아가고 있다. 본래 간직한 모습이나 정체성은 온데간데없고 새 옷을 갈아입기에 바쁘다. 한 도시가 뭔가를 하면, 다른 도시가 곧바로 이를 따라 하는 시대가 됐다. 남는 것은 결국 정체성 없는 획일화된 도시다. 그렇다 보니 각 도시가 갖는 독특한 분위기와 기억들은 하나둘 사라져 버리고 없다. 부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도기 담벼락을 애써 남기려는 것은 거창한 명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과 문화의 흔적, 지역 정체성이 담긴, 오래된 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는 “그걸 왜 남겨”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하찮아 보이는 것도 다시 보거나 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든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작은 자산들이 모이면 새로운 자산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많은 사람이 일생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고 있는 21세기에는 더욱더 열린 마음으로, 더 넓은 시선으로 보존의 명분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담벼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그 자체를 마음껏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리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보존하는 새로운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창조도시>의 저자 찰스 랜드리는 ‘도시의 기억은 역사적 경위를 남기는 데 도움을 주고, 창조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또 사람들을 연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억과 관련된 것을 계속해서 지우고 있다. 그것은 도시의 미를 파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것에 속한다’라고 했다. 부산이란 도시는 과연 여기에 어떤 대답을 줄 수 있을까?
■담벼락, 현재와 소통하는 과거
대한도기 담벼락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과거 모습, 도시가 걸어온 길을 더듬을 수 있는 상징적인 흔적이다. 도시의 숨은 자산이며, 부산이란 도시가 걸어온 역사이자 문화다. 이게 지워지면 기억마저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한도기와 그 담벼락은 부산이 기억해야 할 유산이고 자산이다. 더불어 도시의 숨결이고 흔적이다. 지우고 없애거나 내동댕이쳐선 안 된다. 담벼락은 과거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남아 있어 ‘현재와 소통하는 과거’가 되는 것이다. 도시 속에 스민 과거의 역사와 삶은 고리타분한 죽은 역사가 아니라, 도시 정체성의 잠재력이 될 수 있는 문화의 원재료임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이게 도시를 빛나게 하는 윤슬이기도 하다.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옛 기억과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그런 도시, 부산이 그랬으면 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前)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발 딛고 있는 도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