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지역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간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학 숫자를 줄이고, 지역 혁신을 이끄는 경쟁력 있는 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기존 대학의 생존이 아니라 지역 경쟁력 활성화 차원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정부 정책에도 완전히 역행한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RISE(지자체 주도 대학지원체계) 사업 등 대학 지원 예산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은 지자체가 그 예산으로 자체 대학원을 설립한다면, 다른 대학과 스스로 설립한 대학의 성과 평가를 공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상당수 대학 관계자는 부산시가 지역과 산업계, 대학 간 협력의 조력자가 아니라, 예산과 집행권을 가지고 선수로서 뛰려고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즉 대학에 갈 예산이 내(부산시) 돈이니 내가 대학원을 설립하고, 교수를 충원하고, 맞춤형 인재를 직접 육성하겠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산시 주도로 미래 산업 인력 육성 가능할까
부산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황당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 국립대학 교무처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S 교수는 “부산시가 1400억 원이나 들여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에, 기존 대학원의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 교수는 “대학원 설립과 동시에 대학원장, 학장 사무실을 만들고, 학사·총무·회계·인사 등 대학의 모든 기능을 갖춰야 한다”면서 “건물 신축에 이어, 최고 연봉의 교수진 인건비 부담, 유지·관리를 부산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했다.
화학 전공의 Y 교수는 “부산시 계획상 건축비 1400억 원, 초기 운영비 100억 원으로 예상돼 있다”면서 “미래 신산업 기술 대학원에 투입될 최신 실험 장비와 장학금, 실험 자재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지 고려조차 없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R&D와 교육에 문외한인 부산시가 대학원을 설립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정책 수립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 질타했다.
D 대학 글로컬 추진위원인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교육부의 인허가 문턱도 넘기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들도 서로 규모를 줄이며 특성화하고 있고, 대학원들도 부산에서 대학원생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에 투입될 예산을 지금 부산지역 대학원에 지원해서 우수한 국내외 학생을 유치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대학 총장을 지낸 L 명예교수는 “부산시가 어떤 첨단산업을 할 것인지, 어떻게 인재 육성을 할 것인지 노하우나 계획, 비전을 갖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시가 필요하면, 부산의 어느 대학이라도 기존 건물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면서 “부산시립 대학원은 혈세 낭비”라고 질타했다. L 명예교수는 “부산시는 부산의 대학 인재 양성 고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 산업적 연계를 주도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부산시의회 대학원 설립 동의안 부결시켜
부산시의회에서도 국내에서 지자체 대학원 설립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면서 반대 기조를 분명히 했다. 시의회는 대학원 설립 동의안 안건을 부결하고, 당초보다 대거 삭감한 용역비 3억 원만 통과시켰다.
부산시의회 김형철 시의원은 “2014년에 경기도 남경필 지사가 지금 부산시와 똑같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경기도립대학원 설립을 공약으로 추진하다 실패했고, 제주도가 2017년 수백억 원의 예산으로 탐라대학 부지를 매입해 대학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역시 진척이 없다”라고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막대한 건립비와 운영비로 부산시가 특정 위치에 대학원을 만들어 대학원생을 유치하면, 결국 다른 대학은 충원율이 떨어지는 풍선효과만 발생한다”면서 “기존 대학원에서 부산의 신성장 동력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기껏 인재를 육성해도, 부산에 취업이나 정주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승우 시의원도 “부산의 대학이 축소·통합하는 추세에서 시 예산 100%로 시립대학원을 만드는 것은 옥상옥 행정”이라면서 “산학협동을 통해 기존 대학을 활성화하는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권고했다.
포화처럼 쏟아진 시의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시립대학원 입장을 고수했다. 10~11일 이틀에 걸쳐 열린 부산시의회에서 부산시 남정은 청년산학정책관은 첫날 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역비 3억 원을 챙겼다. 남 청년산학정책관은 시의회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80명 규모를 충원해 신산업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를 기존의 대학 연구 분야와 중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교수들이 연구를 안 하고 있는 분야를 시립대학원에서 중점적으로 연구를 해서 전체 산업 생태계에서 시너지를 내도록 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중복을 회피할 분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본인 용역비를 모아 대학원생을 지원해 랩실을 운영하는 A 교수는 “가능하지도 않을 대학원 설립 타당성 용역비 3억 원을 우리 연구실에 지원해 주면, 바이오 분야 인재 양성과 SCI급 논문 생산이 가능하다”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 돈이면 우수한 유학생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의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취재 후기
기자 생활 30여 년간 수많은 대학 보직교수, 전·현직 총장들과 인터뷰를 했다. 정권에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과거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이 익명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유는 부산시가 대학의 예산 집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돈을 쥔 부산시가 ‘갑’으로 행세할 경우 소속 대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속내였다. 최고 지식인인 대학 전·현직 총장과 교수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지자체와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는 사회가 건강할까. 이러고서야, 지역 고등인재 양성과 대학, 도시의 미래가 있을까. 부산시립 대학원의 운명보다도 더 걱정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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