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던 비트코인이 정점을 찍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에 편입한다는 공약에 50만 달러(한화 약 6억 9800만 원)를 돌파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미국 행정부는 물론 입법을 관장하는 상·하원도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17일 오후 3시 30분 기준 비트코인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서 1억 2700만 원을 기록했다. 빗썸에선 1억 271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간 달러로는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9만 549달러를 나타냈다. 지난 5일 7만 달러선을 밑돌던 비트코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소식 이후 연일 상승하며 사상 최고가인 9만 3000달러까지 돌파했다.
비트코인이 상승세를 멈추고 9만 달러선에 머문 배경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제롬 파월 의장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 영향이다. 파월 의장은 14일(현지시간) 텍사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주최 행사에서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미국 경제가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어떤 신호도 보내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당초 시장에선 연준이 11월에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12월에도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막대한 유동자금이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으로 유입돼 시장의 호재로 작용했다. 코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가상자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12월 금리 인하는 생각했던 만큼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트럼프 랠리는 이제 시작이란 의견도 지배적이다.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가상자산의 규제 완화와 비트코인의 전략적 준비자산 등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정책으로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 가상자산 규제에 앞장섰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해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NH투자증권 홍성욱 연구원은 “디지털자산 기업의 발목을 잡아 온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규제 중에서도 증권성 리스크였다”며 “트럼프 정부 출범 시 공약대로 SEC 의장이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며, 미 금융당국이 유연한 입장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은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로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점이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어서다. 사실상 발행이 무제한인 달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 하락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반면 비트코인은 희소성을 보유한 자산이다. 기존 통화와 달리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됐다. 채굴량이 제한된 금과 유사하다. 현재 연준의 준비자산은 금, 외화, 특별인출권(SDR) 등이다.
가상자산 전문 금융 서비스 기업 갤럭시디지털 마이크 노보그라츠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이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활용되면 최대 50만 달러에 이를 수 있다”며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다른 국가까지 참여를 유도하는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논의가 나온다는 점 자체가 가상자산이 전 세계 경제 구조에 중요한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미 미국 상·하원에선 입법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마이크 카벨 하원의원은 16일(현지시간) 주 정부가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하고, 이를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도 연준이 보유한 금 일부를 매각하고, 비트코인 100만 개를 매입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내년 새 의회에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비트코인 100만 개는 총공급량 2100만 개의 5% 수준이다.
시장에서도 연준이 준비자산으로 비트코인을 보유한다면,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으로서 입지를 굳힐 것이란 전망에 호재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반에크 매튜 시겔 디지털자산 리서치 책임자는 “미국이 전략적 자산의 일환으로 비트코인 100만 개를 보유한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2050년까지 1440만 달러(약 200억 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