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12월 개항을 목표로 추진된 가덕신공항이 건설사의 공기 연장안에 떠밀려 첫 삽도 못 뜨고 향후 일정마저 안갯속인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건설사는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부산시는 국가계약보다 이해관계를 우선한 대기업의 입찰 조건 위반이 초점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에도 소모적인 시간 끌기 대신 국책사업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게 책임을 다하라는 압박이 거세다.
■7년 vs 9년, ‘안전’은 기본
가덕신공항 수의계약 중단 사태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지난달 28일 국토교통부에 공사 기간을 입찰 조건인 84개월(7년)이 아니라 108개월(9년)로 반영한 기본설계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해 5월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입찰을 시작해 네 차례 유찰 끝에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수의계약 대상자로 정했다. 현대건설 측은 6개월간 기본설계를 진행했다.
현대건설 측은 전문가 250명을 투입해 기본설계를 해 보니 공사의 난도와 안전을 고려하면 공기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산시는 공기 논란의 핵심은 안전이 아니라 국가계약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입찰 조건의 7년은 이미 정부가 공식 용역과 전문가 기술 검토를 통해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제시한 공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앞서 두 차례 입찰이 유찰되자 건설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사 기간을 기존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이 조건에 합의해 기본설계에 착수했다.
앞서 정부는 158억 원을 투입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통해 2029년 12월 개항 목표와 7년 공사 기간을 제시했고, 2023년 12월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용역은 (주)유신, (주)한국종합기술, (주)포스코건설, (주)한국항만기술단, (주)연안항만엔지니어링, 제일항업(주), (주)쏘일테크엔지니어링 등 7개사 컨소시엄이 수행했다. 정부는 7개 분야 총 60명 전문가 자문회의도 열어서 안전성을 검토했다.
2023년 12월 기본계획 고시 이후 2024년 4월 국토부가 건설업계를 대상으로 개최한 설명회 자료를 보면, 기본계획에서는 가덕도 서측 10공, 동측 42공 등 해상 시추조사를 실시해 활주로가 포함된 해상 매립 구간의 상세 지층 특성을 파악했다. 해상부의 수심은 7.7~20.9m로, 연약지반은 바다 쪽으로 갈수록 얕게 분포했다. 방파호안에는 100년 빈도 심해설계파를 적용해 12m 높이 파랑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높였고, 상부는 높은 파도에 안전한 케이슨을 적용했다. 연약지반 처리 방식은 구역별 연약지반 심도를 고려해해상 매립 구간의 경계에 해당하는 방파호안과 일반 호안에는 구조물 안전성 검토를 거쳐서 심층혼합처리(DCM) 공법을, 내부 매립 구간은 해상 연직배수(PBD) 공법을 적용했다. 활주로 구간의 30년 기준 부등침하량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허용 기준 이내인 34.28cm로 공항 운영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도중 룰 바꿔선 안 돼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연약지반 안정화에 17개월, 방파제 건설과 매립을 병행하는 대신 방파제를 일부 시공한 뒤에 매립을 시작하도록 공사 순서를 조정하는 데 7개월 등 총 24개월이 더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현대건설이 기본설계에 적용한 활주로 구간 시추 조사 데이터와 설계 기준 파랑은 정부 기본계획에서 적용한 것과 동일하다.
같은 설명회에서 국토부는 부지조성 공사 입찰 방식에 대해서도 “가덕신공항의 적기 개항을 위해 혁신적인 공기 단축 방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설계와 행정 소요 기간,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신기술과 신공법을 적용할 수 있는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뚜렷한 신공법 없이 2년이나 연장한 안을 내놓았다.
김광회 부산시 미래혁신부시장은 현대건설 측의 공기 연장안에 대해 “턴키 방식 발주의 취지는 공사 기간과 시공비 제약 속에서 최선의 방안를 가져오라는 것”이라면서 “현대건설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좀 더 나은 여건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국책 사업의 기준이 민간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국토부의 책임 있는 결정을 압박하고 있다. 김 부시장은 “속도보다 안전”을 말하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공항 안전 기준 강화 등에 따라 변경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시공자에게 지침을 내려서 반영하면 된다”며 “지금 경기는 과거 만든 룰에 의해서 정리가 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되는 것이지 공기 변경 등으로 입찰 과정이 늦어지는 것이 공항을 안전하게 짓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