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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르상티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입력 : 2026-04-05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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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찾는 행위
    '르상티망'이 자라기 좋은 요즘 상황
    상대 끌어내리려다 자신만 소모돼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 삶 긍정 필요

    타인의 성공 앞에 서면 우리 안에서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질투라 부르지만, 질투와 시기는 다르다. 질투(jealousy)는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시기(envy)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타인이 누린다는 자각이다. 시기에도 결이 있다. 상대를 보며 자신을 키우는 시기가 있고, 상대가 그것을 잃기 바라는 시기가 있다. 후자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때, 그것은 안으로 가라앉아 어느 순간 도덕의 얼굴로 나타난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저 사람, 부모 찬스 아니면 절대 못 갔을 자리인데 왜 다들 축하해줘?” 댓글 대부분은 공감이었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그 뿌리가 늘 정의인 것은 아니다.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이 증명하듯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 그 비교가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만날 때 시기는 자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쌓여 굳고, 굳은 것은 원한이 되어 도덕의 언어를 빌려 밖으로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를 노예도덕의 심리적 뿌리로 분석했다. 맞설 수 없는 자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자신을 ‘선’에 세우는 것, 타자의 규정에 기대는 반응적 존재 방식이다. 억눌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시기하는 대상의 가치 자체를 허무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저 사람의 성공은 어차피 편법의 결과”라는 식으로. 현대 심리학은 타인의 실패 앞에서 느끼는 은밀한 안도감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그 보상 구조임을 확인했다. 정의를 말하면서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찾는 것, 그것이 르상티망의 속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 감정이 자라기 좋은 토양 위에 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통로는 좁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이 공존할 때 그 간극은 원한을 키운다. 노력은 미덕으로 강조되지만, 결과는 점점 세습을 닮아간다. SNS는 비교를 일상으로 만들고 알고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비판이 혐오로 미끄러질 때 르상티망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된다.

    르상티망은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막는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데 힘을 쓰는 동안 자신을 향한 힘은 빠져나간다. “어차피 안 된다”는 말은 소리 없이 행동을 멈춘다. 허무가 자리를 잡으면 대화는 사라지고 비난이 남는다. 그 자리에 냉소가 따라온다. 냉소는 때로 유효하다. 허위를 꿰뚫고 과장된 낙관을 경계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냉소는 세상을 비추는 데는 쓸모가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무력하다. 냉소가 깊어질수록 자기 삶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결국 르상티망이 앗아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출구는 두 방향에서 함께 열려야 한다. 사회는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신뢰를 되살려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억눌렀던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결핍을 낳는 것과 달리, 어제와 오늘의 나를 견주는 일은 다른 긴장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시선이 깊어질 때, 니체가 르상티망의 반대편에 놓은 귀족도덕, 곧 능동적 자기 긍정의 길이 열린다. 그 긍정이 삶의 고통과 한계까지 기꺼이 껴안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에 닿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르상티망은 일상의 말과 표정 속에 드리운 그림자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스치는 안도감 속에서 자란다.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거기서 시작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과 자기 삶을 긍정하는 일이 함께 갈 때 그림자는 옅어진다. 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르상티망은 결국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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