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생 프로젝트 부산에 새 옷을] <7> 선진국 사례- 영국 런던 '밀레니엄 빌리지'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3: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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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설계에 '이웃간 어울림' 배려 돋보여

밀레니엄 빌리지 바로 옆에는 거대한 생태공원이 조성돼 전원주택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낡은 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부활시킨 도시 런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가장 중시하는 영국인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낡은 도시의 주거문화를 개선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그런 그들이 진행 중인 흥미로운 '주거 실험'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른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 전국 7곳에 미래의 친환경 주거지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여곳의 재개발 구역에 뉴타운까지 한결같이 초고층 아파트가 빽빽한 '쌍둥이 개발계획'만을 찍어대는 부산과 달리 후손들에게 보다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려는 그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영국의 새로운 실험, '밀레니엄 빌리지'=런던 동부의 노후한 항만을 재개발한 신도시 '도크랜드'에서 템즈강 동쪽 건너편에 자리잡은 그리니치 반도. 이곳에 지난 2000년부터 사업이 시작된 '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Greenwich Millenium Village)'가 자리잡고 있다. 런던의 금융 신도시인 '커너리 워프'와 지하철 쥬빌리선 1개역 거리인 이곳은 첫눈에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곳임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 21일 오후, '노스 그린위치'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흰색 돔 모양의 실내 경기장이자 런던의 명물인 'O2'와 데이비드 베컴의 축구교실 캠프가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 잠시 걸어갔는가 싶은데, 5~10층 높이의 밀레니엄 빌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 때문인지 튀지 않는 색을 선호하는 영국의 다른 주택과 달리 발코니마다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 겉모습이 인상적이다. 단지 내로 들어서자 곳곳에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빌리지를 설계한 스웨덴 건축가는 대다수 집을 복층구조로 만들어 답답함을 없앴고, 집마다 예쁜 발코니를 만들어 한가로이 커피를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2단계로 나뉜 밀레니엄 빌리지의 북측에는 35만㎡ 규모의 상업업무시설 부지가 조성됐고, 이제 막 첫번째 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빌리지 인근에는 대형마트와 가전매장,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이 들어선 복합쇼핑단지가 조성돼 주거에 큰 불편이 없을 만큼 입지조건이 좋아 보였다.

영국의 도시재생기구 '잉글리시 파트너십(English Partnership)' 담당자 사이먼 포웰씨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1천377세대 규모인 1단계 공사는 1천92세대까지 완성됐고, 순서대로 입주는 거의 마무리돼 인구가 2천200여명이 됐다. 카페 등이 들어설 수변공간의 상업시설과 일부 시설 공사도 덜 된 상태"라며 "100년 이상 된 가스공장이 1985년 문을 닫은 뒤에 부지를 1997년 택지로 만들고, 지난 2000년 설계공모를 해 주거공간으로 꾸몄는데 2단계와 상업시설 부지가 다 조성되면 2천850세대 규모의 미래형 신도시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웰씨는 '느리게 조금씩 지어지는 이유'를 묻자 "수요에 따라 집을 짓기 때문에 언제 사업이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또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우리는 1년에 150세대 이상은 잘 짓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파트 단지 신축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건설사가 대규모 대출을 일으켜 이자 때문에 사업을 급히 서두르는 '부산의 모습'은 이곳에 없었다.

△ 사람 중심의 친환경 공간=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의 핵심 테마는 '친환경'이다. 단지 바로 옆 템즈강변 저습지에 호수를 조성했고, 정부가 조성한 생태공원이 이어진다. 다람쥐와 오리 등 동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공간이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 펼쳐지는 것이다. 생태공원 아래에는 온 가족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대형공원도 마련돼 있다. 다섯살배기 딸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주민 로라 캐셔먼(38·여)씨는 "답답한 도심 주택가보다 깔끔한 집과 자연이 가까운 집이 정말 마음에 든다. 딸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이 좋아 계속 여기 살 생각"이라고 자랑했다.

밀레니엄 빌리지 내부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도 주차장을 찾아볼 수 없다. 주차장을 아래쪽에 숨겨 나무 소재 벽과 덩굴로 가리고, 그 안에 주차장을 넣어 훨씬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다. 주차장 위 데크에는 정원을 꾸며 주민들이 마음껏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자연채광과 고단열재, 태양열 주택, 중수도 등을 도입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설계'에 모든 것을 맞췄다.

밀레니엄 빌리지는 '어울림'에도 신경을 쏟았다. 실업자나 장애인, 서민을 위해 임대료를 50%가량 할인한 임대주택을 20%가량 지었지만 따로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 어느 집이 임대주택인지 알 수 없도록 했다. 임대주택으로 인한 커뮤니티의 단절과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의도다.

잉글리시 파트너십 관계자는 "7개의 밀레니엄 빌리지 계획이 대략 완성되면 문제점을 보완하고, 교훈을 되살려 업그레이드된 다른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며 "우리가 배운 교훈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프라가 많아야 어떤 산업이든 유치가 가능하고, 그 도시가 다시 살아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영국 런던/글·사진=박세익 기자 run@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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