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치킨은 흑인들 '영혼의 음식'

입력 : 2012-04-14 16:11:00 수정 : 2012-04-17 10: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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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맛집을 꼽으라면 문현동 곱창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구이, 볶음, 전골 등으로 먹는 소 곱창 요리는 한때 마니아들만 별식으로 즐겨 먹었지만, 지금은 여성들에게도 사랑받는 음식이다. 일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곱창을 먹는다. '아부라카스'라고 하는 소 곱창을 바싹 튀긴 것을 우동에 넣어 먹는 것이 근래 남오사카 지역에서 유행했다. 아부라카스는 튀긴 그대로 소금을 뿌려 먹기도 하고, 채소와 함께 볶아서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 아부라카스는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다수 일본인에게는 낯선 음식이었다. 아부라카스는 전근대 일본 신분제도에서 최하층 천민들이 살던 '부락'에서만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반인이 고기를 얻고 남긴 부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먹기 어려운 내장을 먹기 쉽게, 또 오래 보관하기 위해 튀겼다. 근현대 이후 신분제가 철폐됐음에도 부락민들은 천민의 후예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다. 부락민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 곱창 튀김, 불가리아 고슴도치 요리
세계 뒷골목 최하층민의 '솔 푸드' 기록


우리가 흔히 먹는 프라이드 치킨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원래 프라이드 치킨은 미국 남부 흑인들만의 음식, 즉 '솔 푸드'였다. 닭고기처럼 먹기도 쉽고, 요리하기도 쉬운 요리가 흑인의 솔 푸드가 된 것도 아부라카스와 비슷하다. 백인들이 다리 살이나 가슴살을 차지하고 버린 닭의 날개, 목, 발 등을 흑인 노예들이 먹기 쉽도록 바싹 튀긴 것이 프라이드 치킨의 시작이었다.

'차별받은 식탁'은 일본 오사카 지역 부락민 출신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뒷골목의 '솔 푸드'를 찾아 떠난 기록이다. 일본 부락민처럼 각국의 차별받은 사람들이 가진 비슷한 음식문화를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차별받은 식탁 / 우에하라 요시히로


브라질 국민요리가 된 페이조아다는 백인들이 먹지 않는 돼지 귀와 발을 흑인들이 콩과 함께 삶아 먹던 데서 유래한다. 불가리아 집시는 고슴도치 요리를 먹는다. 고슴도치 가시와 가죽을 벗겨 내려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지만, 그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고슴도치를 먹는다. 외부와의 접촉을 불결하게 생각하는 그네들의 믿음에서 볼 때, 가시로 뒤덮인 고슴도치는 가장 깨끗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힌두교를 믿는 네팔에서는 금단의 소고기 요리를 먹는 불가촉천민도 존재한다. 죽은 말과 소를 처리하고 그 가죽을 가공하는 '사르키'가 그 고기까지 처리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책에서 말하는 차별받은 음식은 우리 요리에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도축장이 있는 마장동 근처에 있는 서울 왕십리 곱창 골목. 여기서 먹던 소 곱창은 소고기가 비싸서 먹지 못하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브라질의 페이조아다는 어떤가. 우리의 돼지 족발 요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곱창과 족발을 차별받은 음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솔 푸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줬던 음식이었기에 이제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된 것이다. 우에하라 요시히로 지음/황선종 옮김/어크로스/184쪽/1만 2천 원.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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