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 피크', 기괴한 상상력과 스산한 아름다움 (리뷰)

입력 : 2015-11-26 10: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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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투데이 황성운 기자]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그 이름만으로 영화의 뚜렷한 색깔이 눈앞에 그려진다. 25일 개봉된 영화 ‘크림슨 피크’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알러데일 저택은 기괴한 상상력과 스산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이 공간은 감독 특유의 색채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을 한껏 드러낸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후부터 유령을 볼 수 있는 이디스 쿠싱(미와 와시코브스카)은 때때로 등장하는 유령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유령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귀족 남매 토마스 샤프(톰 히들스턴)와 루실 샤프(제시카 차스테인)가 아버지의 사업장에 찾아온다. 이들을 탐탁지 않게 보는 아버지와 달리 이디스 쿠싱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아주는 토마스 샤프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디스 쿠싱은 토마스 샤프와 결혼해 영국 컴버랜드의 알러데일 저택으로 향한다. 고풍스러운 동시에 기괴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알러데일 저택이 바로 크림슨 피크다. 가끔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크림슨 피크를 조심하라”는 엄마의 알 수 없는 말을 떠올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감독 특유의 색채가 집약된 이 저택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택을 둘러싼 황량한 벌판과 화려한 내부의 극단적인 대비는 시선을 고정시킨다.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에 숨이 멎을 정도다. CG를 이용하지 않고, 영화를 위해 직접 세트를 짓는 노력이 더해졌다. 
 
또 샤프 남매와 이디스 쿠싱은 미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알러데일 저택의 스산한 분위기에 녹아든다. 루실 샤프로 분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차가움과 이디스 쿠싱 역을 맡은 미와 와시코브스카의 따뜻함은 극명한 대비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들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평범하다. 꽁꽁 감췄던 샤프 남매의 비밀은 그리 놀랍지 않다. 루실 샤프의 질투와 광기, 이디스 쿠싱의 순수와 사랑 등의 설정은 흔히 봐왔던 것들. 위기의 순간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찰리 허냄(앨런 맥마이클)과 유령 역시 식상하다. 좀 더 섬세하고 치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공산이 크다. 
 
어쨌든 ‘크림슨 피크’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팬이라면, 오랜만에 맛보는 매혹적 판타지에 반가워 할만하다. 이에 반해 다수의 대중에게는 적극적인 티켓 구매를 주저하게 한다. 광대한 세트 외에 이야기에도 좀 더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UPI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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