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41>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

입력 : 2016-02-03 19:02:15 수정 : 2016-02-09 17:50:09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물안개 따라 유유자적 걷는 길, 마음이 따뜻해진다

비를 맞으며 동판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속살을 보여주었다. 꽁꽁 언 저수지 위로 철없는 강아지가 뛰어다녔고, 물가의 버들강아지는 봄이 온다며 벌써 기지개를 켰다.

막 새벽잠에서 깬 철새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안개 저 너머에서 끼룩끼룩, 꾸왁꾸왁, 꽥~꽥~, 저마다의 성량으로 새들이 기지개를 켜며 소리를 질렀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 둘레를 유유자적 걷노라니 '여기가 선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꽁꽁 언 땅에 겨울비가 토닥토닥 내리는 날 경남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볼거리가 많고 길이 평탄하여 설 연휴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걷기에 제격인 곳이다.

설 연휴 가족과 걷기 제격인 곳
나그네 경계하는 왜가리 보고
800년 된 돌다리도 건너보고
때 묻지 않은 원시 풍경 간직한 길

■여기는 철새들의 천국


동판저수지는 전국 최대의 내륙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의 명성에 가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흔히 주남저수지로 알고 있는 이 일대는 주남·동판·산남저수지 등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실상 유역 면적은 동판(3,840㏊)이 주남(3,510㏊)보다 더 넓다.

창원시는 이곳에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다. 새들의 서식에 영향을 줄까 봐 새로 길을 낸 것이 아니라 기존 길을 이어 둘레길을 만든 것이다. 본보는 2011년 자전거를 타고 동판·주남저수지 둘레길을 최초로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둑길에 자전거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판저수지 둘레길은 이제 뚜벅이의 몫이다.



주남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다호리 유적지~주남저수지 입구~람사르문화관~주남 배수장~주남 돌다리~가천교~동판저수지 입구~무점마을~태양비료 삼거리~가설 다리~농로~푸조나무 당산숲~다호리 고분마을 입구~주남삼거리를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9.9㎞를 3시간 30분가량 쉬엄쉬엄 걸었다.

황계복 산행대장은 "창원시가 만들어 놓은 동판저수지 둘레길은 주남저수지 입구에서 판신마을을 지나고, 무점마을에서 무신교를 지나 엄나무 고개로 이어지는 9.6㎞ 구간이지만 '산&길'팀이 답사한 길은 창원시가 지정한 둘레길의 도로 구간을 피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동판저수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습지보전 국제회의 기구인 람사르총회를 기념하는 문화관을 지나니 흰 고니와 기러기, 흰뺨검둥오리, 개리 등이 고향처럼 찾는 주남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저수지 너머 안개에 살짝 드러난 백월산이 선경처럼 보였다.

■봄이 오는 무점마을

바위에 뿌리 내린 푸조나무 당산숲.
일기예보는 정확도를 자랑했다. 온종일 비가 내릴 기세였다. 주남배수장에서 주천강 둑길을 따라 걸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한 돌다리가 있다. 주남 돌다리였다. 양쪽에 둑이 생긴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되었을 터. 돌다리는 8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했다.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로 두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사이)다리'라고 불렀다.

비에 젖은 둑길을 걸어 주천교까지 가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야 동판저수지 입구가 나온다. 황토시멘트를 발라놓아 길이 노랗다. 바야흐로 본격 동판저수지 둘레길이 시작된다. 물속에서 자라는 수양 버드나무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창녕 우포늪의 풍경이 부럽지 않다. 왜가리 한 마리가 긴 목을 빼서 낯선 손님을 경계한다.

하염없이 둑길을 따라가니 무점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가 있다. 갈대숲에서 뱁새가 무리 지어 움직인다. 꼭 취재팀을 따라오듯이 보일 듯 말듯 우르르 이동한다. 뱁새는 텃새로 참새보다 덩치가 살짝 작아 보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무점마을도 내력이 꽤 오래되었다. 마을 입구 안내판에서 옛 마을 사진을 볼 수 있다. 무점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인근 신방리 산에서 고령토를 캐어 옹기도 빚고, 동판저수지에서 갈대와 억새, 왕골을 베어다가 빗자루도 만들어 파는 부지런한 마을이었다고 했다. 동판저수지는 물이 들고 빠지는 유수지였으나 1983년부터 철새 보호 정책에 따라 상시로 물을 가두는 정책을 펴서 이제는 습지 생태공원으로 보존되고 있다.

무점마을 종점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해 가지고 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마을을 살짝 벗어나 용잠마을로 가는 신작로를 걷다가 비료 공장 삼거리에서 창원시가 지정한 둘레길을 버리고 저수지로 바싹 다가섰다. 군데군데 습지가 있고 여러 농장이 있다. 망고농원을 지나는데 버들강아지가 벌써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봄이 오는 것이다.

■다호리의 진귀한 보물
주남 돌다리.
막다른 길인가 싶더니 농로가 나타났고, 수로를 건널 수 있도록 가설 다리가 놓여 있었다. 비닐하우스 옆으로 계속 가니 동판저수지와 바짝 붙은 논이 나왔다. 젖은 논둑에 고라니가 먼저 지나갔는지 발자국이 깊게 패 있었다. 논 한 뙈기 정도의 논둑길을 위태위태 지나니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농로가 나왔다. 기러기들이 뒤뚱거리며 얼음판 위에서 놀고 있었다.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사람에 놀라 저수지를 가로질러 도망갔다. 얼음이 얼어 저수지 위로 뛰어갈 수 있다.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선 동판저수지는 때 묻지 않은 원시 풍경을 보여주었다. 길을 새로 개척하니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를 지나지 않고 즐겁게 둘레길을 걸을 수 있었다. 칠성그린아파트와 붙어 있는 푸조나무 당산숲은 신령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큰 바위들 속에서 푸조나무 십여 그루가 기운차게 자라 있었다. 200년 이상 된 보호수로 큰 나무는 둘레가 250㎝다.

시골 동네임에도 교통량이 꽤 많았다. 최대한 도로를 피하려 큰길을 건너 다호리 고분군마을 입구로 걸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건널목만 건너면 출발지인 주남삼거리 정류장으로 갈 수 있었다.

다호리는 아예 '고분군 마을'로 개명을 했다. 마을에 올라가 보았더니 유물전시관도 있고,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다호리 고분군은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고분이 밀집한 곳으로 1988년 발굴에서 기원전 1세기 삼한시대 것으로 보이는 붓, 옻칠기, 부채 등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유물이 발견된 것은 늪지라는 지역적 특색 때문이었다. 동판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며 2천 년 전의 시대상을 떠올릴 수 있다.

종점이자 출발점이기도 한 주남삼거리 입구 버스정류장 주변엔 2008년 창원 람사르총회를 기념하는 작은 조각 공원도 있어 습지 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김할 수 있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 구글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길] <541>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 길잡이 (1/22)
[산&길] <541> 창원 동판저수지 둘레길 산행지도 (1/22)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