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0월 외교안보연구원(현재의 국립외교원)이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동맹이론의 권위자인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월트 교수는 미중 두 나라가 양자관계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지만, 미중 간의 대결이 가속되면 양국으로부터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심각한 압력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으로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중앙 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anarchy)의 국제체제에서 자국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국가는 동맹을 맺는다. 동맹은 공통의 적이 있을 때 잘 작동하지만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면 깨지기 쉽다.
동맹의 어느 한쪽이 동맹을 통해 얻을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보이고 비용과 위험을 회피하려 할 경우에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더구나 동맹의 한쪽 파트너와 그 적대국(경쟁국)의 관계는 동맹관계 그 자체만이 아니라 동맹의 다른 한쪽 파트너와 적대국 간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이런 동맹의 정치학이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60년 이상 유지해온 유일한 동맹국 미국과 최대 교역상대국 중국이 대립하는 시대다. 한미동맹은 북한이라는 명백하고 급박한 위험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냉전의 종식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 중국의 부상이라는 안보환경의 변화는 한미동맹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중국이 21세기를 지배할 것인가?
국제정치학자들은 물론 각국 정책결정자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고민거리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제안보담당 국방차관보를 역임했던 조지프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는 모든 면에서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20세기와는 다르지만 앞으로 몇 십 년은 미국의 세기가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대내외정책면에서 스마트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Is the American Century Over?).
퓨 리서치 센터가 2015년 3월부터 5월에 걸쳐 전 세계 40개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 대신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혹은 이미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인의 46%, 중국인의 67%, 한국인의 5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편집장을 지낸 중국전문가 조너선 펜디는 광범위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중국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Will China Dominate the 21st Century?).
원자바오 전 총리가 지적했듯이 정치구조의 개혁 없이 경제구조의 개혁은 불가능하지만, 개혁은 오히려 국가체제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 결정과 지역 선정 이후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과 발전기 소음에 더해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 가열되고 있다.
북한은 사드 배치는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며 비난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위협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지만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북중러 밀월의 이면에는 동상이몽의 측면도 적지 않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세계의 경찰관 미국조차 혼자서는 결코 자국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남중국해에서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미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도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중 양국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신뢰를 쌓아가야 하며, 두 나라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패권을 다투는 `투키디데스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변국이 할 일이다.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의 연어 수입을 제한하거나 영유권 분쟁을 벌이던 필리핀이 태풍피해를 입었을 때 270만 달러를 기부했던 이케아보다 적은 10만 달러(나중에 180만 달러로 증액했지만 2천만 달러를 지원했던 미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편협하게 보복했다.
국제사회가 중국에게 기대하는 것은 2015년 9월 전승절 행사에서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팽창을 하지 않으며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다짐을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다.
지금은 미국의 정권 교체기다.
지난 22일(한국시간) 공화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제일주의, 글로벌리즘이 아닌 아메리카니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 동맹국의 부담 증가' 등을 제시했다.
오늘(25일)부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11월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내년 1월 누가 새로운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신 정권의 외교정책의 골격이 드러날 때까지는 몇 개월의 시간이 더 걸린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사드 이외에 대안이 있으면 제시하라는 대통령의 말씀에 감히 답한다면 적어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상황을 더 주시하자는 것이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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