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박사의 글로벌 時事 펀치] 카터 시대의 데자뷰

입력 : 2016-08-08 11:49:35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지난달 22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하면서 외교 경험을 쌓아온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트럼프의 취약한 분야가 외교안보 분야다. 특히, 우리는 그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이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미국 대선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조지아 주의 지사를 한 번 했을 뿐인 지미 카터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1976년 대선 때다.

북핵문제가 중대한 고비에 직면해있던 1994년 6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을 갖고 핵개발 동결과 북미대화 재개 합의를 이끌어내 전쟁 위기를 해소하는데 기여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지만, 카터가 민주당 후보가 되었을 때 "지미가 누구?"라고 서로 물을 정도로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인사였다.

또한 카터 후보의 외교안보 브레인들은 한국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었다. 아시아 관련 공약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뉴욕대학의 중국법 전문가 제롬 코헨 교수는 인권을 탄압하던 박정희 정권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해군 제독 출신의 지인 라로크도 강력한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다.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 내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1977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카터는 `즉각 철수, 2년 내 철수, 4년 내 철수'라는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 의견을 제시하라고 합참에 지시하지만, 합참은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존 베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카터와의 면담에서 북한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철수 반대 이유를 제시했으며, 베시의 전임자 리처드 스틸웰 장군도 신문과 잡지 기고, 의원들에 대한 로비를 통해 반대 의견을 활발하게 피력했다.

카터에 우호적인 워싱턴포스트는 1면에 주한미군 철군 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것이라는 싱글로브 주한미군 참모장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이후 싱글로브가 백악관에 소환되고 하원 군사위원회에도 불려갔다.
 
비공개 청문회에서 싱글로브는 북한군은 사전경고 없이 언제라도 한국을 공격할 수 있으며, 주한미군이 실시한 워 게임 결과 주한미군 제2사단이 주둔함에도 불구하고 서울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대통령 정책에 항명한 죄로 싱글로브는 참모장에서 해임되고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싱글로브 증언 이후 카터의 철군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 기사가 속출하고 의회 내의 철군 반대 목소리도 높아졌다.

1979년 6월말 한국을 방문한 카터는 철군 반대를 역설하는 박정희의 훈계를 듣고 격앙했지만, 끝내 침묵을 지켰던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을 제외하면 국무·국방장관과 주한미국대사 등 외교안보 핵심 참모 모두가 반대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워싱턴으로 돌아온 카터는 7월말 주한미군의 철군을 `연기'하는 대통령검토각서(PRM) 제45호에 서명해야 했다. 1978년 봄까지 1개 대대와 지원부대를 철수하기는 했지만, 임기 1년 반을 남기고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4년 5월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미국은 핵확산 방지 차원에서 파키스탄, 브라질, 이란과 함께 한국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위협, 인적 자원, 핵물질과 장비, 정치적 의지라는 측면에서 한국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던 미국 정보 당국은 외부의 지원 없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불신감이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비밀리에 프랑스에 접근했지만, 한국의 핵무장이 소련의 북한 핵개발 지원과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미국의 강한 압력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40년 전과 지금 한미 양국이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며,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물론 한국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외교적으로 반발하면서 다양한 보복을 취할 움직임을 보이자 국내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대신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사드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리도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도 반대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가지다. 하나는 한미 간의 합의대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한미가 합의한 내년까지 최대한 사드 배치를 미루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든 미중 양국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과 정치적 논란 등 한국 정부가 처한 어려움을 동맹국 미국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게는 적절한 외교경로를 통해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외에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리에게 사드는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로컬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미중에게 사드는 양국의 세계전략 차원의 문제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