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79> 밀양 진등산
입력 : 2016-12-07 19:24:48 수정 : 2016-12-09 10:13:50
안개 너머로 길을 묻다
밀양 진등산은 영취산에서 길게 뻗은 능선이 무안면 사명대사 표충비까지 이어진다. 능선을 걷다보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해 깊은 산속 숲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시국이 어수선하니 자연에 길을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는 선현의 가르침이라도 받을 인연이 있을까 했다. 그래서 간 곳이 경남 밀양 진등산(469.2m)이다. 밀양 진등산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도, 대형 포털이 제공하는 지도에도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산 이름이 진등산이다.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진등산 줄기는 황산(396.8m)과 하서산(375.6m)을 이루고 청도천 앞에서 멈추는데 그곳에 사명대사를 기린 표충비가 있다.
동네 사람 입으로 전해지는 지명
독특한 산세 무안고을의 좌청룡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는
황산·하서산 거쳐 청도천서 멈춰
환란 때 땀 흘린 표충비각서 출발
사명대사 기념관 지나 하산길로
■땀 흘리지 않는 비석
이른 아침에 도착한 밀양 무안은 안개로 가득했다. 마침 무안 오일장(1·6일)이 열리는 날이라 새벽부터 천막을 치고 기다리는 상인이 몇 있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오로지 표충비를 보고자 했다. 오래된 향나무가 먼저 반겨준다. 수령이 300년이 훌쩍 넘은 '무안리 향나무'는 1738년(영조 14년)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가 표충비를 세울 때 함께 심었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사내 몇이 빠져나오며 "나라가 이 지경인데 땀은 안 흘리네"라고 했다. 표충비는 국가에 환란에 있을 때 땀을 흘리는 '한비(汗碑)'로 유명하다. 취재진도 혹여 땀을 흘릴까 기대를 했는데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지금 사태는 '국가 환란'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삿된 것을 바로잡는 정반대 현상이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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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산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표석. |
표충비각을 돌아 나오는데 안개가 제법 걷히기 시작한다. 햇살도 잠깐 비친 것 같다. 표충비각 옆에 있는 홍제사 뒷담을 돌아 남밀양성당 무안공소 안내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 산행은 표충비각~무안공소~해원사 입구~체육시설~332봉~하서산~332봉~황산~사거리 갈림길 정자~396봉~410봉~진등산~사명대사 생가 이정표~사명대사 기념관~고라리 버스정류장까지 9.85㎞를 5시간 50분쯤 느긋하게 걸었다.
실질적 산행은 해원사 입구에서 시작한다. 목재 계단을 놓아 산길을 정비해 놓았다. 길도 널찍하여 다소 가파르지만 오르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오르막이 계속되니 더웠다. 자연스럽게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체육공원에서 한숨 돌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운동 기구들을 이 높은 산에 올린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처음 목적과 달리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지 시설물은 삭고 있었다. 하기야 이곳까지 오르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은 충분할 듯싶다.
■낙엽의 바다에 빠지다발밑에는 떡갈나무와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낙엽이 융단처럼 깔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낡은 리본이 바람에 펄럭인다. 반가운 마음에 자세히 보니 '제3회 무안면민 등반대회' 리본이다. '동남권 신국제공항 최적지는 밀양! 맛나향 고추를 사랑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국제신공항은 변죽만 울린 채 멀리 떠났고, 맛나향 고추는 들판에서 잘 자라고 있을 것이다.
무안면은 하우스 고추 주산지로 유명하다. 부드러운 산길을 조금 더 오르니 이정표가 하나 있다. 서부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다. 지금부터는 '진등'이 시작된다. 진등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산 능선이 길게 뻗은 모양이어서 '긴 등'인데 이곳 사투리로 부르다 보니 진등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실 진등산의 독특한 산세는 무안 고을 전체 측면에서 보면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한다. 주산인 영취산에서 보면 우측 질부산은 우백호(右白虎)로 사명대사 생가터인 중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런 유래 때문에 무안 큰줄다리기인 용호놀이가 매년 정월 지금도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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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굴참나무. |
청룡 등에 올라타니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고저가 없는 산길이 이어진다. 아름드리 떡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큰 나무를 만나니 기분이 좋다. 하서산에 도착했다. 진등산 능선에는 어느 봉우리든 정상석은 없다. 산꾼들이 드물게 달아놓은 리본 정도가 있을 뿐이다. 하서산 정상을 확인하고 습관처럼 직진했는데 길이 희미해진다. 점점 잡목이 우거지더니 아예 사라진다. 그제야 길을 잘못 든 걸 알았다. 동행한 건건산악회 김태영 전 회장이 온 길로 되돌아갔다.
하서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를 과신한 것이 실수였다. 이정표는 영취산을 가리키는데 직진 방향이었다. 나중에 확인하니 산길은 하서산 정상에서 90도 왼편으로 꺾어야 했다. 황계복 산행대장이 애초 그 길을 찾았으나 하산로로 판단하고 실수를 했다. '알바'는 취재진이 했으니 나중에 오는 이들은 문제가 없겠다.
■사명대사를 뵈옵다332봉에서 황산까지는 길이 뚜렷하다. 다만 황산 오르기 전에 다소 길이 희미한 부분이 있는데 능선을 고집하면 큰 문제가 없다. 황산은 정상에 무덤 하나가 있을 뿐 조망도, 정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상 왼쪽으로 우회로가 잘 나 있다. 오히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희미하다. 황산을 내려오니 깊은 산중 안부에 사각 정자가 하나 서 있어 생뚱맞았다.
덕분에 정자에 앉아 쉬어간다. 정자 하나 세우느라 짐을 날랐을 이들의 땀을 가늠해본다. 이곳 안부는 사거리로 이정표가 있다. 가야 할 방향은 영취산이다. 된비알을 올라 396으로 간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산길이 다소 묵었다. 대신 매우 맑고 깨끗하다. 최소한의 길은 있되, 때 묻지 않은 산길. 진등산 산행의 묘미는 처녀지를 답사하는 그것이다.
굵은 참나무들이 자리를 지키더니 어느새 멋진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해발고도라야 채 500m도 안 되는 나지막한 산에다 숲이 짙어 조망도 시원하지 않지만, 이어지는 숲길을 걸으니 나무의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행복하다. 진등산으로 추정하는 469봉을 지나 안부로 떨어지니 사명대사 생가지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아쉽지만 하산을 결정한다. 영취산으로 더 진행하면 하산로가 너무 멀어진다.
생가지까지는 1㎞. 내려오는 도중 '표충사산' 표석이 두 개나 있었다. 밀양 표충사인 것 같은데 사명대사 생가지 뒷산이 표충사산이라니 신기했다. 사명대사 기념관을 꼼꼼하게 둘러본다. 넓은 터에 지은 기념관에는 대사의 생애와 활약상이 기록돼 있다. 대사는 조실부모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임진왜란을 맞아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교조에 얽매여 침묵하지 않고 '무엇이 중한지' 아는 분이었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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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진등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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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진등산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길] <579> 밀양 진등산 길잡이[산&길] <579> 밀양 진등산 산행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