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이면서도 분노하는 감정 연기를 하루에 열시간 넘게 촬영하다보니 제 생활에도 우울함이 스며들어와서 힘들었어요."
배우 경수진에게 MBC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는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송시호는 한얼대학교 리듬체조부의 에이스지만 뜻대로 나오지 않는 성적, 옛 남자친구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역도부 룸메이트, 가족의 기대감을 받는 철없는 딸 등 복잡한 내면을 갖고 힘든 상황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최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같은 송시호를 연기하면서 스트레스와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특히 송시호는 복잡한 감정을 표출해야하는 장면이 많았기에 더더욱 힘들었다고.
경수진에게는 '리듬체조'라는 고난(?)이 더 있었다. 체조선수는 겉으로 보면 갸냘프지만 얇아 보이는 신체 안에는 근육과 근력이 엄청나게 숨겨져있다. 그리고 이는 상상 이상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다.
평상시 그는 자신이 유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 앞에서 유연하다고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너무..."라고 말을 줄이더니 이내 "나는 아무것도 아니더라"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리듬체조 선수로의 변신을 위해 경수진은 저염식 식단을 짰다. 그리고 현역 선수들과 리듬체조를 연습하고, 연습이 없는 날은 PT를 받거나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체육인'으로 살았다. 정말 힘든 날이었지만 훈련복 사이즈를 점차 줄여입는 소소한 재미를 찾기도 했다.
"그래도 선수를 연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고난도 동작 같은 경우, 일단 체조 연기를 제가 다 해요. 그리고 대역이 똑같이 한 번 더 하죠. 이후 편집을 통해서 고난도 동작을 화면으로 완성시켰어요."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송시호라는 인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캐릭터였다. 특히 경수진은 송시호를 하루에 열 시간이 넘게 연기하고, 이 모습을 극 중반까지 끌고 오다보니 실생활에도 우울함이 스며들어 고생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며 송시호가 모든 걸 내려놓자 그의 생활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화면 속에서 편해보이던 얼굴은 비단 연기뿐 아니라 마음가짐과 감정이 비쳐져 나온 결과였던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 속 송시호는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으나 경수진이 '역도요정 김복주'를 선택한 이유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본을 읽어보니 송시호가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아픔이 많은데 기댈 곳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애정이 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양희승 작가가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려준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더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또 대중이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입장, 체중이나 피부 등 외모에 대한 압박감, 실력에 대한 중압감 등 리듬체조 선수는 연예인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때문에 송시호라는 캐릭터를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역도요정 김복주'는 5% 안팎의 낮은 시청률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주연배우로서 다소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이번 캐릭터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됐고 보람도 있었기 때문에 다소 낮은 시청률이 그다지 아쉽지는 않다.
함께 호흡을 맞춘 두 주인공 이성경(김복주 역)과 남주혁(정준형 역)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경수진보다는 동생이지만 촬영장에서는 활력을 담당하며 분위기를 띄워 오히려 본인이 많은 덕을 봤다고.
"성경이는 복주예요.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또 현장에서 그렇게 노래를 열심히, 잘 부르더라고요. 뮤지컬 나가보라고 권하면 또 그 정도는 아니라고 수줍어하는 걸 보면 동생인데, 키가 커서 기대고 싶은 느낌이 들때는 언니 같기도 했죠. 주혁이도 역할처럼 장난기 많았어요. 그리고 나이 상관없이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었어요. 게다가 연기 욕심까지 많으니까 제가 누나지만 배울점이 있었어요."
여정을 하나 마친 그는 당분간 쉬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다만 여행보다는 내면을 채우면서 휴식하고 싶다며 "책은 종종 읽었지만 종이 신문을 최근부터 보기 시작했다. 정치·경제·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26살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경수진은 매년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오고 있는 그는 이런 휴식조차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생각하고 있다. '안정적인 배우'라는 꿈을 꾸는 그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캐릭터, 장르를 가릴 생각은 없다.
"불러만 주시면 감사하죠. 그리고 그때를 위해 할 수 있는 준비를 계속 할 거고요. 그래도 어두웠던 송시호를 떠나보냈으니 이제는 밝디 밝은 캐릭터가 끌리긴 하네요. 제 속에는 '여자여자'한 모습이 꿈틀거리고 있거든요?(웃음)"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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