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 "수난의 연속? 안씻고 안갈아입고..더 편했어요"(인터뷰)

입력 : 2017-03-21 16:53:13 수정 : 2017-03-21 16: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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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는 미씽나인에서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간 서준오로 열연을 펼쳤다.

"배우에게 아쉽지 않은 작품이 있을까요.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 욕심내다보니 오히려 흐름이 깨진 것 같아 안타깝죠. 그래도 제작진도 배우도 최선을 다했어요."
 
최근 종영한 MBC '미씽나인'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용두사미'라는 달갑잖은 수식어를 붙였다. 레전드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 9명이 비행기 추락사고를 만나 무인도에서 극한 생존기를 펼친다는 참신한 소재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점차 개연성을 잃어가자 많은 시청자들이 이탈했다. 심지어 극 후반에는 "의리로 본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배우 정경호는 '미씽나인'의 주인공 서준오로서 백진희(라봉희 분)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중책을 맡았다. 때문에 이번 드라마의 부진이 아쉽기도 하지만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최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경호는 '감사하다'와 '죄송하다'는 말을 제일 먼저 했다.
 
"이런 소재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끝까지 봐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어요.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건 누구 한 명 빠지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방극장 상황이 안 좋다고 현장까지 침울해질 수는 없기에 배우와 스태프들은 오히려 더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덕분에 종영 후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두 번이나 MT를 다녀오며 결속을 다졌다.
 
당초 '미씽나인'은 10부까지 대본이 나온 상황에서 시작했다. 중반부까지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무인도에 추락한 9명이 생존하면서 한 명 한 명 인간성이 변하는 과정을 그리려던 드라마였다.
 
그러나 미스터리가 더해지고 촬영이 추가되다보니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초반에 던져졌던 '떡밥'들을 회수해야하는데 방향이 달라지니 어설퍼지거나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생겨버렸다. 때문에 모든 주요인물들이 등장해 뜬금없이 페인트칠하는 모습이 그려진 엔딩 장면이 의아함을 낳았다. 정경호 역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결말은 에필로그 개념이에요. 9명이 무인도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라는 설정인데, 그 부분이 표현이 잘 안됐죠. 감독도 하고 싶은 말 있음 하라고 해서 몇몇 대사는 즉흥적으로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시청자들께서 오히려 더 헷갈리셨던거 같아요."
 
특히 정경호와 백진희가 서로를 바라보며 "망했어요"라고 말한 대사가 화제가 됐다. 드라마 성적이 좋지 못하자 '미씽나인' 상황을 축약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경호는 "그건 정말 대본이었고, 페인트칠이 엉망이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신통찮았지만 그래도 배우들의 호연에는 이견이 없었다. 정경호 역시 초반 코믹하게 망가지는 모습으로, 중후반부에는 생존자들을 리드하고 최태준(최태호 분)이 씌운 누명을 벗는 열연으로 십수년간 쌓아온 연기 내공을 발휘했다.
 
그는 얻어 터지고, 함정에 빠지고, 헤엄도 치고, 지뢰도 밟으며 다양한 수난을 당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며 "처음만 어렵지 한 번 하면 다 쉬웠다. 안 씻고 옷도 안 갈아입으니 편하긴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와 함께 정경호는 함께 호흡을 맞춘 최태준, 백진희, 오정세(정기준 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최태준 씨 역할은 6명이나 살해하고 살인미수도 많은 지독한 살인마에요. 힘든 역할인데 끝까지 놓지 않아서 고맙죠. 백진희 씨랑은 몇 년 전에 예능에서 40일간 함께 해서 좀 편했어요. 다만 로맨스가 없어서 아쉬웠죠(웃음). 오정세 씨는 배울게 많은 형이에요. 무인도에 함께 갈 사람 꼽으면 가장 먼저 생각날거에요. 물론 다른 배우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03년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정경호는 15년차라는 경력을 가진 배우다. 하지만 그에게는 15년째 '재발견'이라는 '웃픈' 수식어가 붙는다. 연기력은 손색 없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대 웃어요', '무정도시' 등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적을 낸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저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15년이나 듣겠어요.(웃음) 그것만으로도 전 너무 좋아요. 인생작품이 없다고 하지만 제게는 모두 인생작이에요. 작품 보는 안목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크게 신경 안 써요. 이 직업을 좋아하니까 일을 못하게 되는게 두려울 뿐이에요."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어떠하든 정경호는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반성할 점을 돌아보고 일할 현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할 줄 아는 배우였다. 그리고 새로운 역할과 '쎈' 상황일수록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는 그의 대답은 왜 정경호가 15년째 '재발견'이란 말을 듣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답이었다.

사진=박찬하 기자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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