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영화도시 칸. 지난 24일 밤 11시(현지시각) 이곳 뤼미에르 극장에선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상영됐다.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다섯 편의 한국영화 중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작품이었고, `악녀'에 이어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소개된 것이다.
'불한당'은 경찰과 조직, 잠입조의 수싸움과 비정한 승부를 그린 누아르로, 칸에 진출하는 등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하지만 감독의 SNS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흥행에 타격을 입고 있는 '비운의 작품'이다.
설경구, 임시완, 전혜진, 김희원 등 네 배우가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레드 카펫을 밟는 모습에서 영화 안팎의 을씨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배우들의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부재는 쉽게 상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 외적인 부분 때문에 폄하되기에 `불한당'은 아까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작품의 미덕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위장경찰이 조직원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쉽게 상대를 제거하지 못하는 영화들은 많이 만들어져왔지만 `불한당'은 중반부에 경찰이 스스로 신분을 밝힘으로써 다른 영화들이 무게를 두었던 정체 탄로 위기의 긴장감을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점이 독특하다.
대신 이 영화는 이미 한 패가 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파국을 맞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르 영화로서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해도 그 과정을 예측하는 재미, 두 인물의 마지막 맞대결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어 있는 내러티브다.
`악녀'와 마찬가지로 `불한당' 또한 프로덕션의 퀄리티가 높다는 점과 장면 장면에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례로 초반부 교도소의 전경을 비출 때 카메라는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눈 여겨 보지 않으면 하나의 테이크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역동적이지만 과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적절한 움직임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유리창을 배경으로 재호(설경구)가 병갑(김희원)을 처리하는 장면도 흑백 누아르처럼 실루엣으로 잔혹함을 표현한 미학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작년 칸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 상영되었던 `부산행'은 영화 곳곳에서 환호와 박수를 터졌을 만큼 기록적인 호응을 받은 작품이었다.
`불한당'은 보다 무거운 분위기를 가진 작품으로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영화를 관람했지만 영화가 끝나자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네 명의 배우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새벽 한 시를 넘긴 시각이었지만 신선한 감각의 강렬한 이미지들, 배우들의 호연, 결말부의 여운에 사로잡힌 듯 관객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칸(프랑스) = 윤성은 영화평론가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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