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폭력이 뭐냐"고 물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여성정책 혁신을 위한 토크콘서트- 한국정치, 마초에서 여성으로' 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다. 여성 정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지만, 홍 대표는 참석 소감을 물은 강릉원주대 초빙교수에게 “젠더 폭력이 뭐냐. 선뜻 이해가 안 간다"며 젠더 이슈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강 교수는 젠더 폭력에 대해 "(남녀 간) 권력의 차이로 인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생기는 성폭력, 데이트 폭력, 부부 강간 등의 폭력"이라고 설명했다. '젠더(gender)'는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을 의미한다.
참석자들이 '야당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홍 대표는 "(한국당에 대한) 여성들의 편견은 저 때문에 나온 이야기다. 제가 앞으로 잘하겠다"며 "한국당이 여성 문제에 둔하다는 건 서운하다. 우리당은 비록 탄핵을 당했지만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문제시된건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과거 자서전 속 돼지 발정제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이대(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달 31일에도 부인 이순삼 씨의 고향인 전북 부안 줄포를 찾아 "촌년이 출세했다. 줄포 촌년이 정말 출세했다"고 발언했다.
여야는 일제히 홍 대표를 비난하고 나섰다. 20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양향자 최고위원은 "홍 대표는 여성정책 콘서트에서 '젠더 폭력'이 뭐냐고 물음으로써 참석자 모두를 경악케 했다"며 "여성 정책 토론회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홍 대표는) '여성들이 국회에 들어오면 싸우기도 잘 싸운다'는 등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 대표는 행사 중간에 아예 눈을 감고 조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였고 제2당의 대표라는 것이 여야를 떠나 참으로 개탄스럽다"라고 말했다.
정의당과 바른정당도 목소리를 보탰다. 이날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 역시 브리핑을 통해 "당 대표가 '젠더' 개념을 모른다는 것은 중요한 사회 문제인 젠더 관련 이슈를 방관해왔다는 방증이다"며 "자유한국당의 인권 감수성 결여가 심히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황유정 바른정당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홍준표 대표가 또다시 젠더인식의 바닥을 보여주었다"며 "제1야당 대표로서 사회적 문제인 '젠더 폭력'에 무지한 것이 이미 젠더 폭력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네티즌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관련 기사에는 '젠더 폭력이 언제부터 상식이냐', '나도 처음 들었다'는 댓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후 한때 '젠더'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젠더(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은 성별 위계에 기초해 발생하는 폭력으로, 개인의 의지에 반해 행해지는 물리적, 성적, 언어적 폭력을 일컫는 포괄적 용어다. 젠더 폭력은 성폭력, 성적 착취, 강요된 성매매, 인신매매, 성희롱 등은 물론 가정폭력, 여성혐오범죄, 데이트폭력, 여아 낙태 등 물리적, 성적, 언어적, 구조적 폭력을 포괄한다.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Gender의 한글 표현은 '성'이지만 한국에서는 해당 표현이 생물학적 성(sex)의 의미를 강하게 띄기 때문에 gender violence를 성폭력으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여성학계의 주장이다. Gender는 사회문화적인 성과 생물학적 성, 섹슈얼리티 등을 포괄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학술 영역에서 젠더 폭력은 사회적 구성, 권력 관계, 불평등과 관계성 등을 강조하기 위한 학술어로 이용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젠더 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대표적 젠더 폭력인 데이트폭력 살인사건의 경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42건이 발생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검거 건수도 2014년 6675건에서 2015년 7692건, 지난해 8367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공공기관에서도 젠더폭력대책 TF구성, 스토킹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발의, 젠더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 등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조경건 에디터 mul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