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올드보이는 마린보이다 ... 500시간의 바다와 '올드마린보이'

입력 : 2017-11-01 17: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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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구리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사람이라. 나라고 안 두렵겠나? 가장이니까 매일 매일 들어가는거지"

진모영은 모호 속에서 깨달은 진실을 '관조'라는 렌즈로 보여주는 것을, 즐기는 감독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압도적인 촬영분과 드라마틱한 구성을 통해 객관성을 부여받는다. 또 100% 실화이고 크리에이티브 다큐여서 설득력도 지닌다.

진모영 감독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시킨 후 극명한 대비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마지막이다.

전무후무할 기록을 남긴 전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그는 '강(죽음)'을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 아내와 남편, 봄과 가을, 영원한 사랑을 노래해 480만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3년 만의 신작 '올드마린보이'에서는 머구리 박명호를 중심으로 삶의 경계를 다른 색깔로 변주해낸다. 시커먼 바다 밑과 밝은 바다 위, 북과 남, 물과 뭍, 탈북민과 원주민, 남편과 아내, 대형문어와 머구리, 아버지의 과거와 아들의 미래가 그의 영상을 수놓는 음표들이다.

그래서 '올드마린보이'는 올드보이와 마린보이가 동시에 플레이하는, 묵직한 블루스 록이기도 하다.

전작 '님아'가 인생의 마지막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삶의 분수령인 중년기를 다룬다.

'알짜 공산당원' 박명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밤바다를 통해 남한에 정착했다. 자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바다로 들어간다. 그의 낡고 기운 잠수복은 현실을 옭아매는 굴레지만,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로 변신시키는 슈퍼 슈트다. 바다는 그에게 두려움이지만 놀이터다. 잠수병에 대한 걱정과 한 가닥 산소줄에 모든 것을 내맡긴 것을 빼면.

특히 초대형문어와 머구리의 처절한 사투가 담긴, 고태식 이정준의 수중촬영신은 한국영화 100대 명장면에 포함돼야 한다. 한국 영화가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기 때문이다. 또 500시간을 바다에서 보낸 진모영의 끈기와 기다림은 그가 영화 머구리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머구리 박명호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늙은 선장은 머구리 선주에게 퉁바리를 듣고 배를 떠난다. '탈북자 배를 타는 건 뱃놈 인생 막장'이라는 말을 남기고.

박명호는 밤새 고민하다가 큰 아들을 부른다. 남한 생활 초기에도 아들이 배를 몰았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베테랑 선장을 믿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이 옆에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는 예쁜 아내에게도 식당 개업을 권유한다. 머구리 이후를 생각하고 내린 처방이다. 탈북 전에도 아내와 아들들을 설득시키고 동의를 구했다. 그는 생각이 깊고 멀리 본다. 그런 그가 카메라 앞에 선 이유는 무얼까?

그렇다고 러닝타임 내내 긴장만 있는 영화도 아니다. 즐겁고 낙천적이고 활기차다. 박명호는 감성이 풍부하고 유머러스하다. 영화는 그의 이런 천진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인모의 진달래꽃을 알고, 그 꽃을 꺾어 아내에게 바칠 줄도 안다.

또 아재 개그를 즐기고 20년 북한군 시절을 재미나게 회상한다. 그의 아버지도 40년을 군복무했다며 '60년 충성한 집안이니, 아들들은 군대 안 가도 된다'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또 '수중 방뇨 불가'라서 작업 중에 잠시 배로 올라와 소변보는 표정을 보면 그가 장난기 가득한 '영 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의 모든 가장은 아재라고 무시당하는 올드보이들이다. 그러나 삶이란 바다를 누비는 씩씩한 마린보이다.

북핵으로 인해 한반도 주변이 거시기한 형국이다. 사방이 깜깜한 바닷속 같다. 그래도 우리에게 한 가닥 산소줄이 있다. 가족이다.

매일 매일, 한 주 한 주가 버거운 가장들과 가족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고무친 탈북자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다큐다. 그리고 해가 가기 전에 박명호의 '청진호횟집'에 가서 그가 건져 올린 바다의 보물들을 맛보고 싶다.

박홍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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