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육지의 만남 해물칼국수, 가을 첫 추위에 제격 [박상대의 푸드스토리]

입력 : 2017-11-07 08: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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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 있는 이작도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늦가을인데 배 갑판에 앉아 있었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동행한 여행사 직원에게 나가서 저녁 뭐 먹을지 물었더니 "해물칼국수 어떠세요?" 대답한다. 이때 동의하지 않으면 욕먹을 게다.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도로변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 칼국수집이다. 전국에 바지락칼국수를 유행시킨 대부도가 아닌가. 지금은 해물칼국수라는 상품을 홍보하는 간판과 현수막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바지락칼국수보다는 해물칼국수가 더 강렬한 유혹의 메시지를 날린다.
           
25년 전통을 자랑하는 포도나무 할머니 칼국수집에 들어가 주저 없이 해물칼국수를 주문했다. 해물칼국수에는 바지락과 굴, 홍합과 가리비 따위 조개류, 왕새우, 꽃게, 주꾸미와 낙지가 들어 있다. 애호박과 양파, 대파, 마늘을 넣어서 맛을 살려 준다.
국수나 칼국수 맛의 절반은 육수가 좌우한다. 멸치, 다시마, 사골, 닭뼈 등을 삶아서 만든 것이다.
              
한여름에 비가 내릴 때나 날이 궂을 때, 할머니나 엄마는 칼국수를 만들어 밥상에 올렸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칼로 썰고, 삶은 팥 국물을 넣어 끓인 팥칼국수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런 탓인지 지금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칼국수나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밀은 늦가을에 씨앗을 뿌려서 겨울을 땅 속에서 보내고 봄에 자라고 열매를 맺은 뒤, 여름에 수확한다. 밀의 성질은 찬 편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 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기운이 낮아질 때는 그냥 국수를 먹는 것이 아니라 칼국수나 파전을 만들어 먹는다.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는 날씨가 궂어서 우울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해산물이나 육수를 통해 밀가루가 지니고 있는 찬 성분을 뛰어넘는 따뜻한 성분이 가미된 것이다.
            
그런데 유명 칼국수집 식탁에는 깍두기나 총각김치, 하다못해 단무지가 올라온다. 밀가루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시킬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소화를 돕는 무를 함께 먹는 것이다. 칼국수나 국수, 수제비, 자장면이나 우동을 파는 음식점에서 무로 만든 반찬을 한 가지도 내놓지 않는다면 주인이나 주방장이 음식의 속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칼국수집에서 보리밥을 한 숟가락 주는 것은 칼국수로 인해 기운이 상승하는 것을 조율하기 위한 것. 보리밥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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