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선입견은 빼고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준케이(본명 김민준)는 그룹 2PM의 메인 보컬로 10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정작 노래 실력으로 주목 받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퍼포먼스를 중시했던 팀의 특성상 준케이의 가창력을 발휘할 기회가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로 활동으로 조금씩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오던 준케이는 새 앨범 '나의 20대'를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음악적 역량과 성숙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준케이를 만났다.
■ 인간 김민준의 '20대' 담아낸 앨범
준케이는 지난달 27일 발매한 신보 '나의 20대'를 통해 그동안 겪었던 사랑과 이별,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타이틀곡 '이사하는 날'을 비롯해 총 다섯 곡이 수록됐으며 준케이가 전곡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참여한 앨범이다.
그는 "원래 이 앨범을 낼 계획이 없었다. 올 초 2PM 콘서트에서 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한 후 치료에 전념하며 입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시간이 너무 비는 것 같았다"며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쉬는 걸 못 견디는 스타일이라서 남는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대를 지나오면서 느꼈던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려고 과거 싸이월드에 비공개로 써놨던 일기까지 찾아봤죠. 사랑, 미래에 대한 고민, 사회적인 시선 등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한 앨범이에요."
■ '이사하는 날'은 실제로 이사하기 전날 밤 쓴 곡
타이틀곡 '이사하는 날'은 이별한 연인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 집을 떠나며, 남겨뒀던 그리움을 정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름엔 덥다고 에어컨 앞에 붙어 있기만 했고 겨울엔 춥다고 내 침대 이불 속에 붙어만 있던 팬더 인형을 꼭 안고 자고 있던 너' 같은 섬세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에 준케이의 담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지난해 8월 선보인 첫 번째 미니앨범 'Mr. NO♡' 타이틀곡 'THINK ABOUT YOU'의 애절하고 강렬했던 느낌에 비해 한껏 힘을 뺐다.
올해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전날 밤 떠오른 감정을 가사로 썼다고 한 준케이는 "5년 동안 살았던 집의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그 공간이 텅 비는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며 "이사를 하면 그 집에 묻어있던 사람과의 추억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연애를 자주 해왔다"면서 "만났던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준 덕분에 열애설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연예인이다 보니 함께 하지 못할때가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미안하다"고 떠올렸다. 이어 "어느 날 친구가 '네 노래 가사에는 후회하는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진영이 형이 '너의 이야기를 쓰되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봐'라고 해주신 말이 굉장히 와 닿았어요. 지난해 나왔던 'THINK ABOUT YOU'는 조금 생소한 퓨처 알앤비 장르의 곡이다 보니 회사에서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음악적으로 도전하고 결과물을 통해 '내가 이만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컸다면 이제는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앨범 발매 이전에 선공개한 '11월부터 2월까지'에서는 같은 소속사 후배 소미와 호흡을 맞췄다.
11월에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에 이르는 2월의 순간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풀어낸 곡이다. 발랄하게 시작해서 곡 말미로 갈수록 이별 때문에 아파하는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준케이는 "소미에게 '너가 부르면 좋을 것 같은 곡이 있다'면서 갑작스레 제안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노래가 잘 나왔다"며 "후렴구까지 부를 계획은 없었는데 소미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곡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잘 맞아서 그 부분까지 작업을 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 9년 동안 따라 다니는 '염소꽃', "실수 인정…프로는 변명해선 안돼"
대중이 준케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2008년 신인 시절 한 무대에서 박효신의 '눈의 꽃'을 불렀던 그는 불안한 음정 처리와 음 이탈 때문에 많은 이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당시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염소처럼 떠는 것 같다며 '염소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준케이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흑역사'를 직접 끄집어냈다.
"'눈의 꽃' 사건 이후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도 그 영상을 봤는데 웃기긴 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제가 어떤 걸 하더라도 웃긴 이미지로만 각인이 되니까 당황됐죠."
그는 "사실 그때 무대에 오르기 전 몸이 안 좋아서 노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수가 변명을 하는 건 안 좋지만 신인이다 보니까 내 컨디션이 안 좋다고 그 자리에서 빠질 수도 없었다"며 "나의 명백한 실수고 거기에 대해선 달리 할 말이 없다. 앞으로 더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2PM은 나의 일부 "장수비결은 배려와 책임감"
지금의 준케이를 있게 해준 2PM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7년차 징크스'를 이기지 못하고 해체된 여느 아이돌 그룹과 달리 2PM은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다. 준케이는 군 생활을 마친 뒤 더욱 성장한 2PM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멤버들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조금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갈등이 생기게 마련인데 다들 워낙 착하고 배려심이 많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대하고 다시 모였을 때는 섹시하고 성숙한 30대의 모습을 보여 드릴테니 그때도 2PM을 잊지 않고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내년 초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외박을 나온 옥택연과 만났다. "택연이 얼굴이 군대 가기 전보다 훨씬 좋아졌더라고요.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걸 보니 걱정이 사라지고 저도 군 생활을 잘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데뷔 10년차 아이돌 선배로서 후배들을 향한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룹의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해요. 설사 활동을 하면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도 그 순간은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봐요.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났기 때문에 마찰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럴 때는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을 솔직히 말하고 그 자리에서 푸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거든요."
■ 솔로가수 준케이 "아직 이뤄야 할 것 많아, 열심히 계단 오를 것"
2014년부터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준케이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쓴 곡을 선보이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다. 2PM처럼 대표적인 히트 곡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솔로가수 준케이다.
그는 "앨범 표지에 계단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처럼 솔로 준케이는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아직 이뤄야 할 것이 많다"면서 "이번 앨범을 통해 대중이 준케이라는 가수에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깨트리는 계기가 되면 기쁠 것 같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20대 초반에는 무모한 도전을 자주 해서 힘에 부치고 괴로운 적도 많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 너무 그리워요. 30대가 되니까 매사에 신중해지고 몸을 사리게 되는 면이 있어요. 올해 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내년에는 좀 더 융통성 있게 살아가고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들 때 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채찍질 할테니 지켜봐주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지켜 본 준케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중하고 속이 깊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직업으로 성공을 맛봤지만, 그 이면에 남모를 고충과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괜찮다'며 웃는 여유를 보인 준케이는 인터뷰 종료 후 일일이 취재진을 찾아다니며 '추운 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에 접어든 그의 음악 인생 2막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준케이의 새 앨범에는 '솔직히 말할게','11월부터 2월까지'(Feat. 소미), '이사하는 날', '왜' (Feat. 박지민), '나의 20대' (Feat. 더블케이)가 실렸다. 지난달 27일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전곡이 공개됐으며 전날 오프라인 음반이 발매됐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상록 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