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분다. 바람을 타고 회사 앞 음식점 골목에서 매운탕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킁킁 코를 벌름거리자 조기매운탕 냄새가 가슴으로 파고든다.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조기매운탕에 소주를 마시면 늘어졌던 기운이 상승하고, 만면에 웃음기가 번진다. 기습적인 찬 기운에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지는 것은 물론이다. 퇴근 후 귀가 시간을 조금만 늦추면 조기매운탕으로 저녁 기분을 조절할 수 있고, 집에서 조기매운탕을 끓여 놓는다면 남편의 귀가시간을 재촉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기매운탕은 된장과 고추장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풋고추, 다진 마늘, 양파와 대파를 넣는다. 어떤 집에서는 생강도 조금 넣고, 무와 호박을 넣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 쑥갓이나 미나리를 넣어서 비린내를 덜고, 색감을 돕는다. 황토색 국물에 초록색 대파와 쑥갓은 입맛을 당기게 한다.
언젠가 조기로 유명한 서해안 섬에서 많은 기대감 속에 조기매운탕 앞에 앉았다. 그런데 조기매운탕 국물을 먼저 떠먹은 후 적잖이 실망했다. 아, 조기가 아깝구나! 두부와 다진 마늘과 호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끓인 것이다. 조기 향은 오간 데 없고, 마늘향이 맛을 주도했다. 이건 말로만 조기매운탕이지 잡탕이었다.
조기매운탕은 조기 살을 젓가락으로 발라먹어도 하얀 살이 혀를 즐겁게 하지만 살을 발라서 따끈한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 더 황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살점이 없어도 국물에서 조기향이 나야 진짜 조기매운탕이다. 고추장이나 다진 마늘을 너무 많이 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너무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는 따끈한 조기매운탕에 하얀 쌀밥 한 숟가락 떠먹고 싶다. 혀에 착 감기는 매운탕 국물과 너무나 연해서 씹을 필요조차 없는 조기 속살에 소주 한 잔이 그리운 계절이다.
요즘 서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70년대까지도 연평도에 파시가 열리면 개들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다는데. 그 많던 조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째 이유는 중국 어선들이 쌍끌이 어선으로 금어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낸 탓이라고 한다. 둘째는 기온과 수온상승으로 조기들의 활동무대가 남쪽으로 이동한 탓이라고 한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