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야알못'(아구를 잘 알지 못하는)이에요."
최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렇게 달달한 향기가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주인공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의 여자친구이자 여주인공인 김지호(정수정)가 등장하면 극의 분위기가 환해지곤 했다.
카메라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김지호와 김제혁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인연을 맺어왔는지 오롯이 보여줬다. 두 사람은 극 중에서도 실제로도 나이차이가 띠동갑 이상 나는 연인이지만 이 같은 드라마 흐름 덕분에 전혀 어색함 없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장을 두근거리게, 때로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2009년 걸그룹 f(x)로 데뷔한 후 정수정은 거의 항상 긴머리만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깨에 채 닿지 않는 단발로 변신했다. 덕분일까, 이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조금씩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정수정에게 터닝포인트가 될 듯하다. 그동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속자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하백의 신부 2017' 등과 확연이 다른 모습을, 그것도 꽤 성공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때론 기존처럼 도도하게, 때론 한 없이 어린 연인처럼 귀엽게, 때론 오히려 누나처럼 김제혁의 모든 것을 챙기는 모습은 삭막한 감빵이 대부분이었던 안방극장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적절했다. 이런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정수정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야구 좋아하나?
A. 전 '야알못'이에요. 잘 몰랐어요. 그래서 공부 많이 했어요. 캐스팅 된 후 야구장에 경기 보러 많이 갔어요. 김지호는 야구 선수의 여자친구이기도 하지만 야구 감독의 딸이기도 하니까요.
Q. 김제혁과 김지호는 아주 어릴때부터 알던 사이긴하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좋았던 것일까?
A.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보니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시점부터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깊은 사이가 됐죠. 꼭 드라마상의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내 일과 내 여자만 좋아하고, 그 외에는 모르고. 이런 남자의 진득함이 좋은 것 같아요.
또 김제혁이 "망치로 내 손 내려치겠다"고 섬뜩한 문자를 보냈는데, 그런 것도 너무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다보니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돈 해야 전화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게끔. 서로 잘 아니까.
Q. 초중반에 나온 키스신이 꽤 화제가 됐다. 키스를 '한다'를 넘어 '퍼붓는다' 수준이라 인상깊다. 촬영할 때 NG 몇번이나 났나.
A. 그렇게 연인이 하는 키스신은 둘 다 처음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둘 다 많이 긴장하고. 심지어 가글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토론'도 했죠. 하하. 물론 NG 났죠. 그런데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하하.
Q. 김제혁이 아닌 박해수의 성격 어때 보였나?
A. 김제혁과 반쯤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과묵하지 않고, 장난도 많이 치고, 반전 매력 있는 오빠예요. 처음 보면 무뚝뚝하고 상남자스러운 느낌만 있을거 같은데 귀여운 면이 꽤 있더라고요. 잘 웃기도 하고.
Q. '접견 로맨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과거 회상이 아니면 교도소 접견으로 만남이 이뤄지는 게 좀 색다른 포인트였는데.
A. 접견실 장면에선 스킨쉽이 있는 게 아니었죠. 표정과 말투, 행동만으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 많았죠. 그런데 막상 촬영하니까 (교도소)환경이 연기에 몰입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비록 세트장이지만 접견실은 처음 가봤거든요. 죄수복 입은 것도 실제론 처음 보고. 그런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장 분위기나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Q. 여주인공이긴 한데 분량이 주인공 답지 않다. 김제혁 원탑 드라마인 이유도 있지만 김지호는 여주인공이라기보다 가장 자주 나오는 여자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A. 사실 여주인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데, 어쨌든 처음부터 신원호 감독님이 분량을 말해주셨어요. "교도소 이야기 때문에 네 분량은 많이 없을거야"라고요. 그런데 크게 중요하게 생각 안했어요. 그냥 이야기가 재미있었거든요.
드라마에서 교도소만 나오다가 저나 (임)화영 언니 나오면 좀 프레쉬한 느낌이 들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모습 비출 때 밝은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제혁과 떨어져는 있어도 애틋한 끈이 이어져있는 듯한 느낌 원하셔서 그런 부분을 많이 표현하려고 고민했어요.
Q. 주요 등장인물들을 보면 연령층이 좀 있다. 나이 차이가 제법 있는 배우들과 작업한 기분은?
A. 막상 촬영하다보면 그런 걸 잘 못 느꼈어요. 친구 또래는 친구라 편하지만 오빠, 언니들과 하는 작업도 호흡이 잘 맞았죠. 어릴때 데뷔해서 늘 막내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익숙한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사실 촬영 현장서 다른 분들 만나기가 힘들었어요. 화영 언니만 여자이면서 교도소 밖에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둘이 촬영 없어도 많이 현장에 찾아갔어요. 연기하시는 선배들 보고 배우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함께 놀고 밥 먹고 그러면서 친해졌죠. 이후론 사석에서 자주 모이기도 했어요.
Q. 정수정은 f(x)로 데뷔한지는 10년이 다 되가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그렇게 오래 안 됐다. 신원호 감독이 자세히 디렉팅을 하던가?
A. 그렇지는 않았어요. 다만 원하시는 부분에선 확고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건 콕 짚어주시고요. 가끔 연기한 후 "OK"하고 그냥 다음 컷 넘어갈때가 있었는데, 전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괜찮아" 그러면 진짜 괜찮은거에요. 배우들 전부 초반엔 어리둥절 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괜찮아서 OK 하신거였어요.
그리고 캐스팅 전 미팅 할때 제 개인적인 부분을 많이 물으셨어요. 이 친구가 뭘 가지고 있고, 뭘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신 것 같았어요. 김지호가 잘 웃고 장난도 잘 치고 하는 모습이 정수정과 70% 정도는 비슷해요. 한 남자만 진득하게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부분을 잘 봐주신 듯해요.
Q.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눈에 띈 건 정수정의 단발 변신이다. 긴 머리가 아닌 스타일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A. 쉽지 않았어요. 단발 한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단발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셔서 "잘라야죠" 답했죠. 그래도 자르기까지 엄청 오래 걸렸어요. 미용실 가서도 두 시간 앉아있다 겨우 자르고. 그런데 이번에 김지호가 아니면 평생 자를 것 같지도 않았어요.
'하백의 신부'에서는 차갑고 도도하고 여신 같은 분위기를 보여야했는데, 이번엔 친근하고 편안한 모습 보여줘야 하니까요. 잘 자른 거 같아요.
Q. 정수정의 연기를 정수정이 보니까 어떤 느낌이 드나?
A. 못 보겠어요.(웃음) 되게 쑥스럽고 부끄럽고.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확인하고 반성해야하니까 보긴봐야하고. 그래도 부족한 점 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들께 "이상한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하는데 좋은 말만 해주시네요.
Q. 올해가 '황금 개띠의 해'라고 한다. 94년생 정수정도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 있나.
A. 사실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최근 '하백의 신부'에서부터 이번 드라마까지 계속 달려와서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무술이나 액션 같은 거요.
개인적으로 액티브하고 몸 쓰는 활동 좋아하거든요. 나중에 연기에도 써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이제 잠시 쉬면서 한 번 배워볼까 해요.
사진=SM엔터테인먼트
김상혁 기자 sunny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