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과 만나 정상회담을 합의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행보는 한마디로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 정권을 세습한 김 위원장은 그동안 남측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을 해왔지만 이번 특사단과의 면담에서는 '대화'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강조했다.
'대화' 내세우는 면모 강조
4월 한미훈련도 '이해' 발언
6일 청와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의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해 핵무기를 통해 국제사회를 위협하던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져 자신이 북한 정권의 정통성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청와대 측은 김 위원장이 요구한 대화의 조건에 대해 "북한에서 특별히 대화에 나오기 위해 우리나 다른 국가에 요구한, 특정한 것은 없다.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 김 위원장이 의외로 유연한 자세로 남북관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신경질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혀 우리 측 인사들을 놀라게했다. 특사단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4월부터 예년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한미연합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미연합훈련 관련 우리 입장은 훈련 재연기나 중단은 힘들고, 명분도 없다는 것이었으나, 김 위원장은 이미 보고받고 우리 측 입장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사단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연합군사훈련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 문제가 제기될 경우 북측을 설득해야겠다고 준비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파격행보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북한 정권의 고립과 그에 따른 북한 지배층의 동요 때문에 대화로 나서는 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스위스 유학 등을 통해 국제 정세와 현실감각을 익힌 김 위원장이 북한 정권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유연하게 움직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김 위원장이 특사단과 면담·만찬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남조선 대통령 특사대표단 성원들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자기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어주시고 최상의 환대를 베풀어 주시었으며 생각지도 못한 통이 큰 과감한 결단을 내려주신 데 대해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김 위원장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발전방향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주목받는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북한 체제의 특수성으로 볼때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남북관계나 국제정세가 전개될 경우 언제 어떻게 김 위원장의 입장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관측했다.
박석호 기자 psh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