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부지에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지상 저장시설을 추진하자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한다. 내년에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원전 2호기 등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지역 시민·환경단체와 고리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한수원의 사용후핵연료 지상 저장시설 추진안에 대해 “현재는 임시 저장시설이지만 언제든 영구 저장시설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또 내년 고리 2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 등 설계수명이 끝나는 노후 원전들의 수명 연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시설 포화도는 86% 정도다. 주민들은 노후 원전 수명 연장으로 추가로 발생하게 될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기 위해 지상 저장시설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민은주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시설 없이 추진되는 건식 저장시설은 사실상의 영구 저장시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면서 “또 고리 2호기 수명 연장도 지역사회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되고 있는데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한수원 측은 경주 월성원전 안에서 1992년부터 건식 저장시설을 이미 운영 중이어서 고리원전 지상 저장시설 역시 안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월성원전과 달리 고리원전은 농축 우라늄을 사용해 폐기물의 독성이 더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
황운철 기장군의회 의원은 “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 원전의 건식 저장시설은 고리원전에서 국내 최초로 추진되는데 방사능 농도가 훨씬 높아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밝혔다. 고리원전 인근 주민 박 모(58) 씨는 “그동안 지역 주민들은 국가 추진 사업이라는 명목하에 희생을 강요당해 왔는데, 한수원이 원전밀집 지역민의 우려를 더 높이는 쪽으로 사업을 추진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한편 부산환경연합, 탈핵부산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다음 달 4일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지상 저장시설 추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