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만으론 분만 진료 못 버텨…필수의료 지원대책 시급”

입력 : 2024-02-13 07:00:00 수정 : 2024-02-13 0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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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자성 좋은문화병원 부원장
-산부인과 ‘분만 진료 중단’ 해결책은?

좋은문화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고 있다. 분만 진료 중 의사 무과실일 때도 형사처벌과 보상책임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는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다.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시급하다. 좋은문화병원 제공 좋은문화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고 있다. 분만 진료 중 의사 무과실일 때도 형사처벌과 보상책임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는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다.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시급하다. 좋은문화병원 제공

부산 기장군에 있는 정관일신기독병원이 지난 9일 분만진료를 중단했다. 같은 재단 병원인 화명일신기독병원도 오는 6월부터 분만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하고 세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산부인과에 특화된 의료기관이 연이어 분만 진료를 포기하자 지역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분만 병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산만의 일이 아니고 인천, 광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했던 필수의료 붕괴가 현실이 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현재 분만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좋은문화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구자성 부원장으로부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에 대해 들어 봤다.


좋은문화병원 구자성(산부인과 전문의) 부원장. 좋은문화병원 제공 좋은문화병원 구자성(산부인과 전문의) 부원장. 좋은문화병원 제공

 

-최근 정관일신기독병원과 화명일신기독병원이 분만 진료 중단을 선언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보나.

“분만실은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면 안 된다. 병원 입장에서는 하루에 한 명을 출산하든 열 명을 출산하든 고정된 인력과 시설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고정비가 높은 상황에서 일정 분만 건수가 충족되지 않으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당장 적자가 나지 않더라도, 매년 감소하는 분만 추이를 보면 가까운 미래에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난해 부산의 합계 출산율은 0.72로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권이다. 저출생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분만 중단을 선언한 병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결국 분만 진료를 계속하면 병원 경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분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분만 병원들 상황도 비슷할 것인데.

“지난해 11월에 저희 병원이 월 분만을 100건도 하지 못했는데도 부산에서 분만 건수가 제일 많은 병원이었다. 분만 건수가 많을 때는 월 600건 이상 하기도 했다. 그때는 월 700건의 분만을 하는 병원도 부산에 있었고, 분만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 종합병원에서도 월 100~200건을 했으니 격세지감이다.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지금 부산의 종합병원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는 곳은 2곳뿐이다. 현재의 분만 수가는 이러한 분만 진료의 특성을 반영할 정도로 높지 않다. 앞으로 문을 닫는 산부인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말 분만 정책수가가 신설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달 초 정부에서 필수의료 정책 방향을 밝히면서 분만 등 필수의료를 위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발표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


-분만 병원 특성상 분만실-수술실-신생아집중치료실-산후조리원 등이 연계되어 있어야 하고, 24시간 교대근무를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시설 및 인력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비용부담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

“사실이다. 분만이란 것이 일반 수술처럼 예약제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부서가 24시간 응급 상태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2차병원으로서는 드물게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오랜 기간 운영하고 있다. 출산율 감소로 신생아집중치료실 하나만 놓고 봐도 적자 운영이다. 하지만 안전한 분만을 위해서 경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지역의 분만 인프라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결정이다.”


-분만 중단을 선언한 병원들이 그 이유로 ‘심각한 저출생’과 함께 ‘의료진 수급문제’를 거론했다. 의료진 수급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2024년도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산부인과 지원율이 정원의 60%대를 기록했다. 산부인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장기 비인기과가 된 건 이미 15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니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숫자가 적고, 전문의 수급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더 문제는 산부인과 중에서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를 전공하는 의사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의 산과 파트 교수님들도 전공의 부족 탓에 당직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 지역만 하더라도 소수의 교수님들께서 고위험 분만 및 분만 후 합병증 치료 영역을 담당하며 잘 버텨 주고 있는데, 이런 대학병원의 분만 인프라가 무너질까 조마조마하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출생 인구는 줄고 수가는 낮으니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 대신에 성형이나 미용진료 파트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미용·성형 쪽으로 가는 것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면서, 스트레스가 적고, 수입을 더 많이 올릴 수도 있다. 분만 진료는 거의 100%가 급여 진료이고, 급여 수가는 나라에서 정한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분만과 같은 필수의료를 비급여로 하자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산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분만 인프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남아 있는 의사들만 끝까지 분만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떠나면서 필수의료 공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현장을 계속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분만 수가의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 있어서 법적인 부담도 덜어 줘야 한다. 분만은 확률적으로 예기치 못하는 합병증 위험을 수반한다. 많은 경우는 의료진의 과실과 관계없이 발생하며,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산부인과 진료의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형사처벌과 보상 책임을 덜어 주기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


-분만 과정에서 의료 사고가 터지면 천문학적인 배상 비용이 들어간다. 분만 사고 위험에 대해 전문의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듣고 있다.

“분만 사고의 결과는 참혹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급작스러운 결과로 평소 젊고 건강한 여성이 사망하기도 하고, 당연히 건강하게 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기가 심각한 장애를 입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산모나 가족들이 겪을 고통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슬픔과 분노의 화살이, 설사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할지라도, 분만을 담당했던 의사와 병원에게 향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산부인과 의사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압박은 상당하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무과실 사고에 대해서조차 형사처벌과 보상 재원 일부를 의사가 부담하게 하는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닥칠 문제라고 보는데.

“본원에서도 10여 년 전에 분만 후 합병증인 양수색전증으로 산모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사건 이후 유가족들이 밤낮으로 병원을 찾아와 시위를 하고, 담당 주치의의 신상이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의사는 병원을 떠났다. 또 산모들 중 상당수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면서 꽤 오랜 기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요즘은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분만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의사와 병원이 범죄자로 매도당할 수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의료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전공의 지원자도 부족하다고 들었다. 산부인과 전문의 선배로서 어떤 심정인가.

“산부인과 학회 차원에서 전공의와 전임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47%가 전문의 취득 후에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분만 사고와 의료 소송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지금의 현실에서 후배 의사들에게 산부인과 지원하라고 설득한다면 결국은 사명감과 직업적인 긍지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덧붙인다면 정부에서 산부인과와 같은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다고 하니 이를 한번 믿어 보자고 말해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런 모호하고 불확실한 사실에 근거한 설득이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산부인과의 저수가도 고질적인 문제다. 턱없이 낮은 수가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나.

“수가를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 저출생 시대에도 지역마다 분만 인프라는 굳건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분만 정책수가와 고위험 분만수가를 신설한 것은 적절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다. 최근 분만 진료를 중단한 병원들도 이 수가가 신설된 이후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가 있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의대 증원 효과는 최소 10년 후에 나타나고 또 10년 이후라고 해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리라는 보장이 있나. 문제는 지금이다. 지금 당장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있는데 10년 뒤에나 효과를 볼 수 있는 의대증원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되어선 안 된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모든 수련을 끝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필수의료 분야 전공을 지원하는 의사 숫자를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도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필요할 수 있으나 순서로 보나 중요도로 보나 이 둘보다 앞서야 할 이유가 없다.”


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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