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수온으로 인해 어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연근해 대형 어선들의 줄폐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해마다 어업 생산성이 악화하고 인건비나 유류비 등 고정비용까지 치솟자 대형 어선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저인망수협)은 내년도 감척 수요를 조사한 결과 소속 어선 136척 중 74척(54%)이 희망했다고 6일 밝혔다. 2년 전과 지난해 수요 조사에서는 희망 어선이 각각 6척, 15척에 불과했다. 저인망수협은 대형트롤, 대형쌍끌이, 대형외끌이 등 3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다. 대형트롤은 38척 중 무려 34척이 감척을 희망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인 18척이 부산 선적이다.
이들 3종 어선은 주로 60~140t으로 국내 연근해 어선 중 규모가 큰 편이다. 오징어, 갈치, 삼치, 조기 등 대중성 어종을 주로 잡으며, 지난해 기준 생산액은 2940억 8215만 원에 이른다. 저인망수협 임정훈 조합장은 “어민에게 감척은 폐업이나 다름 없는데 이번처럼 절반 이상의 선박이 한 번에 폐업하겠다고 나선 적은 처음”이라면서 “시대에 뒤처진 낡은 수산업법을 개정해 대형 어선들이 받는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해수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어업인 간 지나친 조업 경쟁을 막고 국내 수산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매년 감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계획상으로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근해 어선 524척, 연안 어선 1500척 등 총 2024척을 감척할 방침이다. 현재 저인망수협 어선은 일부만 감척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워낙 생산성이 떨어진 탓에 감척 사업에 포함되지 못한 어선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체 파산할 수 있다.
저인망수협이 주로 잡는 오징어, 삼치 등은 모두 회유성 어종인 탓에 적정 수온을 찾아 북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70여 년 전 제정된 수산업법에 따라 업종별 조업 구역은 고정돼 있어, 어선의 어획량은 갈수록 떨어진다. 지난해 저인망수협이 잡은 살오징어는 6451t이었지만 올해는 1561t으로 75.8% 줄었다. 같은 기간 삼치도 3164t에서 1451t으로 반토막 났다.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름값이 치솟고 인건비가 해마다 오르면서, 기름과 인력 소요가 많은 대형 어선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대형선망수협은 조업 구역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 2월 일본 원양선망어협과 공동으로 한일어업협정 재개를 양국 정부에 건의했지만 관련 논의는 제자리 걸음이다.
내년 대형 어선 줄폐업이 현실화하면 지역 수산업 전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선원 등 일자리가 감소할 뿐 아니라 부산 수산물 위판량이 줄며 지역의 수산 유통·가공업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는 수산물 수급에도 영향 끼쳐 ‘밥상 물가’를 흔들 수 있다.
수산업계는 급격한 산업 침체를 막기 위해 유류비 보조, 조업 구역 탄력적 조정 등 다각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감척 지원 예산 확대 등으로 어업인의 퇴로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립부경대 김도훈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수산 자원을 관리하고 어업인들의 경제 여건을 개선하려면 현재보다 30% 정도 감척이 이뤄진 뒤, 장기적으로 어획 허용량을 매매할 수 있는 어업 할당제(ITQ)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