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안 정기여객선 항로 중에도 알짜로 손꼽히는 통영 매물도 운항 선사가 또다시 휴항에 들어갔다. 새해벽두에 이어 올해만 두 번째다. 코로나19 팬데믹 후유증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수지 개선을 위한 고육책조차 허가청 반대로 막히면서 눈덩이 적자를 해소할 길 마저 사라졌다. 남해안 뱃길을 잇는 상당수 여객선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실에 폐업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8일 해양수산부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거제시 남부면 저구항에서 통영 매물도를 오가는 매물도해운(주) 소속 여객선 2척이 이날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휴항한다. 사유는 ‘경영악화’다.
저구 뱃길은 매물도에 닿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자, 몇 안 되는 수익 항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비껴가진 못했다. 2015년 한해 26만여 명에 달했던 수송인원은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7만 5000여 명으로 급감했다. 이듬해 6만 3000여 명으로 바닥을 찍은 이후 2022년 8만 5000여 명으로 반등하는 듯했지만 지난해 7만 9000여 명으로 다시 줄었다. 결국 올해 1~2월 취항 후 처음으로 휴업을 단행했지만 경영 환경은 더 악화됐다.
매물도해운 김종대 대표는 “코로나가 터진 2020년 이후 쌓인 적자만 15억 원이 넘는다. 주주 차입금에 해양진흥공단 대출도 부족해 지난해 예비 여객선까지 팔아 근근이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일단 기한은 정했지만, 지금으로선 재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정부가 여객선사 경영난을 해소하려 한시적 지원(운항결손금의 20%), 준공영제 확대(결손금 일부나 전부 보전)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매물도해운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섬 주민 승선 비율이 10% 미만인 뱃길은 ‘관광항로’로 분류해 각종 지원사업에서 제외한 탓이다.
매물도해운 승객 중 도서민 비율은 1% 남짓이다. 그러나 고정 수요가 없는 만큼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더 심각했다. 실제 코로나 유행이 정점이던 2021년 연안여객선 매출 감소율을 보면, 관광항로는 전년 동기 대비 29%로 일반항로 21%보다 높았다. 김 대표는 이를 근거로 관광항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뒷짐만 졌다.
그러다 지난해가 돼서야 이 기준을 없앴다. 덕분에 매물도해운도 ‘2024년 연안여객선 안정화(준공영제 확대)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앞으로 발생할 적자에 대해서만 보전해 주는 탓에 매물도해운처럼 당장이 급한 선사에겐 실효성이 떨어졌다. 손실 보전도 순수 운항경비만 따져 산정한다. 총 10억 원 적자 나면 6억 원만 인정해 그중 70%만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결국 김 대표는 궁여지책으로 항로 변경을 꾀했다. 매물도해운은 그동안 저구항을 출발해 매물도 당금항과 대항항을 거쳐 소매물도에 접안해 승객을 내린 뒤 곧장 복항했다. 승객들이 소매물도 등대섬 비경을 감상하려면 여객선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30분가량 걸어야 한다. 이런 승객 불편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려 소매물도 접안 전 등대섬을 한 바퀴 순회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 경우 10분 정도 운항 시간이 늘고, 유류비도 증가하지만, 운임은 인상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작년 말 마산청에 항로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마산청은 사실상 유람 행위로 여객운송사업 취지에 맞지 않는 데다, 경관 감상을 위해 승객이 한 방향으로 쏠릴 경우 선박 복원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반려했다. 이에 김 대표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대형 로펌 법률 자문에다, 승객이 외부 갑판으로 올라가도 일정 인원까지는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선박검사증서를 근거로 지난 7월 재차 허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매물도해운처럼 경영난에 허덕이는 선사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통영운항관리센터 자료를 보면 경남권 여객선 이용자는 2017년 231만여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2020년 159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이후 2022년 4월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191만여 명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2023년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유가, 고물가가 겹치면서 원가 상승률이 예년 대비 40% 이상 급등했다. 이로 인해 경남을 연고로 하는 여객선사 9곳이 불과 2년 사이 5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떠안았다. 경영난을 견디다 못한 선사 2곳은 아예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운항해야 하는 정기여객선은 경영 위기가 불가피하다. 항로가 아예 끊어지면 결국 피해는 섬 주민과 관광객이 떠안아야 한다”면서 “안팎의 불확실성을 상쇄할 수 있는 보다 전향적인 정책 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