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9일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6개 쟁점 법안을 재의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명백한 입법권 침해”라며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고 재의요구 이유를 설명했다.
한 권한대행이 이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낸 법안은 양곡법 외에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2004년 고건 당시 권한대행 이후 역대 두 번째다. 국회로 되돌아가는 6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폐기된다. 앞서 야당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 법안들에 영향을 받는 많은 국민들과 기업, 관계부처의 의견도 어떠한 편견 없이 경청했다”며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과 입법 취지는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정부가 불가피하게 재의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회와 국민께 소상히 설명해 드리고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고질적인 쌀 공급 과잉 구조를 고착해 쌀값 하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쌀 생산 확대로 시장 기능 작동이 곤란해져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고 설명하는 등 각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 재의를 요구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정부는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재의요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입법권 침해다. 한 권한대행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윤석열과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는 당장 탄핵에 착수하자는 의견과 함께 ‘김건희 여사 특검법’, ‘내란 일반특검’ 등의 처리 문제까지는 지켜보자는 기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너무 많은 탄핵은 국정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며 보류한 상태다. 야당 내에서는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론 못지 않게 한 권한대행 탄핵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당에 비판 여론이 제기돼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대통령 권한을 이어받은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게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이 어느 헌법과 어느 법률 규정에 의한 판단인지 잘 모르겠다”고 야당의 탄핵 추진을 반박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에게 보장된 헌법상 권한”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기 때문에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고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