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의 수사 결과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겼다며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9일 1심 선고 공판에서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의 수사 결과 이첩 보류 지시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명 혐의에 무죄를 내렸다. 또 이종섭 전 국방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도 “박 대령의 상황 진술은 신빙성이 상당해 거짓임을 증명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비록 1심이지만 이번 판결은 명령 계통이 엄격한 군의 특성을 감안해도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군과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박정훈 대령은 2023년 7월 19일 수해 피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숨진 채 모 상병의 순직 사건을 수사한 뒤 7월 30일 이 전 장관에게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9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특정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하겠다고 보고한 뒤 승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 이 전 장관은 이의 보류를 지시했고, 박 대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서류를 경찰로 넘겼다. 이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박 대령은 이 일로 항명 등 혐의로 군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1심 판결은 박 대령의 이러한 일련의 일 처리가 법률에 규정된 행위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행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1심 선고에 대해 박 대령은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고, 사회 각계 인사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국방부는 “군사법원의 판결은 존중한다”고 밝히면서도 항소 여부에 대해선 침묵했다. 각자 처지에 따른 당사자들의 반응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이번 판결의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하면 파장은 단지 박 대령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군 내부적으로는 군 명령 체계의 투명성과 적법성 그리고 책임성에 관한 새로운 기준 정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당연히 이는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궤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박 대령의 항명 사건이 가닥을 잡은 만큼 지지부진한 공수처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수사에 더 속도가 붙어야 한다. 세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며 관련 특검법을 무산시킨 윤 대통령과 관련한 책임론도 함께 규명돼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 박 대령 판결의 핵심인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는 현 정국 상황과 관련해 국가 공권력 기관에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당장 윤 대통령에게 발부된 체포영장 집행을 한사코 막고 있는 대통령 경호처는 이날 판결의 정신을 꼭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엄격한 위계 체계 속에 있더라도 상관의 명령이 헌법의 원칙까지 넘어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