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역이 카페 거리 등으로 바뀌는 일명 ‘핫플’ 신흥 상권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민과 상인 간 마찰이 일상화됐다.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과 갖은 노력에도 민원을 멈출 수 없다는 젊은 자영업자의 갈등은 한 쪽이 떠나야만 비로소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개·폐업이 잦은 상권의 특성상 상인회 조직 등이 어려워 현장에서의 자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지자체 등의 적극적 중재 역할을 찾는 목소리도 나온다.
■ “암 투병 중” 주민의 호소
“폐암 환자가 투병 중입니다. 고령의 노인들이 주거하고 있습니다. 취객들의 흡연, 소음에 고통스럽습니다.”
12일 오후 3시 부산 수영구 민락로의 한 골목. 주택을 멋스럽게 리모델링한 술집과 카페 사이 낡은 다세대주택 담벼락에 걸린 암 투병 고백 현수막이 힘없이 나풀거렸다. 빛바랜 현수막은 이 골목에서의 갈등이 오래 이어져 왔음을 암시했다. 직접 현수막을 제작한 주민 A 씨는 3년 전 집 맞은편에 음식점이 개업하고 동네 일대가 번화가로 급격하게 바뀌며 고통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 민락로에 영업허가를 받은 일반·휴게음식점은 총 75곳. 매년 23~26곳씩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 골목의 풍경을 두고 A 씨는 “물밀듯이 가게가 생겨났다”고 전했다.
A 씨가 기억하는 경찰 신고만 10여 차례. 한밤중 취객의 소음을 차단하려 A 씨는 한여름에도 창문 전체에 외풍 차단용 비닐 막을 붙이고 살았다. 젊은 자영업자의 사정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소음과 담배 연기 등을 참을 수 없을 땐 끝내 시비가 붙기도 했다. 수영구보건소에서 제작한 현수막과 금연 표지판도 담벼락에 함께 걸었지만, 방문객들은 대수가 아닌 듯 현수막에 담뱃불까지 붙이곤 했다.
A 씨는 “집 앞에 책상을 두고 200~300명씩 서명을 받을까도 싶었지만 우선 플래카드부터 걸었다”며 “이웃 주민이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리며 호소할 만큼 2~3년간 전쟁을 치렀다”고 밝혔다.
갈등은 끝내 한 쪽이 골목을 떠난 후에야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A 씨에 따르면 그가 사는 주택은 곧 매각돼 암 투병 중이거나 고령인 주민들은 다른 주거지를 찾아 떠날 예정이다. A 씨는 세입자로, 그가 사는 주택에는 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A 씨는 “부동산 업자들이 동네 곳곳을 다니며 주택을 음식점으로 바꿔댔고, 이제는 평당가도 매우 많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곧 떠나겠지만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택가의 급격한 상권화가 해수욕장과 가까운 거리마다 벌어지면서, 소음 등 생활 불만 신고도 덩달아 늘었다. 수영구청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식품위생업소에 대한 소음 신고는 21건(광안동 4, 민락동 13, 이외 지역 4)에서 45건(광안동 14, 민락동 19, 이외 지역 12)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골목마다 전쟁… 속 앓는 MZ 사장님
조용하던 주택가에 잡음을 낸 젊은 자영업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취재진이 만난 맞은편 식당 사장 조태준(32) 씨는 현수막을 가리키자 2~3년간 지속된 전쟁이 떠오르는 듯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적극적 중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내놓은 쓰레기가 바람에 날아갔다며 항의를 받기도 했고, 가끔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폐기물이 가게 앞에 놓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님에게 목소리를 낮춰 달라 요청하고, 가게 앞 쓰레기를 주우며 노력했지만 동네 전체에서 민원이 쏟아졌다. 그는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만큼 피해를 이해하고 최대한 해결해 보려 했다”며 “하지만 가끔은 감정이 북받쳐 가게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앞에서 주민분과 큰 소리를 내며 다툰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게는 속칭 ‘광안리 2.5가’쯤 위치해 있는데, 주택과 상권이 섞여 있는 환경이라 어느 가게든 비슷한 처지라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상인들은 바닷가 상권을 ‘1가’로, 골목 안쪽으로 갈수록 ‘3가’로 부르는데, 1가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 2~3가는 소규모 가게의 개·폐업이 매우 잦다. 이런 이유로 그는 상인회 등 조직을 꾸려 나름의 질서를 만들거나 갈등을 중재하는 식의 대처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실제 실행에 옮기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금연 거리 지정, 간판의 밝기와 소음 발생 기준 등 질서의 ‘선’을 공공기관의 개입 하에 주민과 협의해 마련하고, 새로 개업하는 가게에 안내만 하더라도 훨씬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게 조 씨의 생각이다. 불법 개업도 아닌데 ‘무조건 주의하라’는 요구만 받아선 갈등이 끝날 수 없다는 것. 조 씨는 “주민의 요청으로 가게 앞에 재떨이를 설치했더니 구청에서는 화재 위험이 있다며 재떨이를 치우라 했다”며 “주민이 구청장에게 보낸 호소문만 우편으로 전달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안내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을 그어주면 손님을 자제시킬 때 할 말이라도 생긴다”며 “예를 들어 명확한 소음 기준이나 쓰레기 배출 장소 등을 정하고 인근 상권에 안내한다면 훨씬 개선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성태 수영구청장은 “해당 사례에 대해 보고 받지 못했다”며 “관련 사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