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장례식장 1층 임시 빈소는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청 화마’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통곡으로 가득 찼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떠나보내게 된 이들은 “아직 못 보낸다”라며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21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창녕군에서 투입됐던 광역 진화대 9명은 산중턱에서 불길에 포위됐다. 5명은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젊은 나이에 60대 산불진화대를 인솔했던 창녕군 공무원 A(33) 씨를 포함한 4명은 결국 불길을 헤쳐 나오지 못했다. A 씨는 22일 오후 8시께 시천면 인근 야산 7부 능선에서 진화대원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검안 결과 모두 화재로 인한 사망으로 확인됐다.
A 씨 유가족은 “아침에 불 끄러 가야 한다고 해서 ‘조심히 갔다와라’고 인사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특히 합천군에서 일하던 A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A 씨 아버지는 “산불진화대 방염복과 마스크 하나 채워 그 불구덩이에 올려보냈다는데, 이제 서른 갓 된 애가 뭘 안다고 화재 현장 선봉에다 세워뒀냐”면서 “누가, 어떻게 업무 지시했는지 꼭 찾아내 ‘왜 그랬냐’고 되묻고 싶다”며 울분을 토했다.
무엇보다 A 씨의 유족을 가슴 아프게 하는 건 A 씨가 시신으로 돌아온 이날이 아끼던 조카의 100일 잔치라는 점이다.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조카의 100일 잔치는 눈물의 장례식으로 변했다. A 씨 누나는 “지난주 동생이 어머니와 나를 데리고 아기 100일 축하 반지까지 챙겨줬다”며 “우리 딸을 그렇게 예뻐했는데, 그런 착한 동생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눈물을 훔쳤다
산림녹지과 막내였던 A 씨의 사망 소식에 가족과 창녕군청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공무직으로 3년간 근무하며 주경야독 끝에 공무원으로 임용된 A 씨였다. 창녕군을 떠나 가족이 있는 창원에서 일하겠다며 경남도청 면접을 봤던 A 씨는 오는 28일 최종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A 씨 어머니는 여태껏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자기 일만 꿋꿋하게 해 오던 성실한 아들이라며 오열했다. 그는 “주변에서 ‘아들은 꼭 합격하겠다’고 해 창원 와서 같이 지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다 무슨 소용이냐”고 울먹였다.
A 씨는 22일 사고 당일 근무자도 아니었는데 교대 근무를 하다 화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입을 뗀 A 씨의 어머니는 “산불 담당자 중 여직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원이 3명뿐이라 하더라”면서 “아들이 부서 막내라서 늘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사고 난 어제(22일)도 아들 근무가 아닌데 누가 바꿔 달라래서 근무 일정을 변경했는데 이렇게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창녕군은 A 씨 근무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이 같은 유족의 분노는 뒤늦게 정식으로 차려진 창녕군 장례식장을 찾은 창녕군청 소속 공무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가족은 공무원들을 향해 "집안의 대가 끊어졌는데 어떤 브리핑이라도 해주는 게 기본 상식 아니냐"고 따지며 산불 진화 투입 전에 안전 장비, 안전 교육 등이 충분했는지 물었다. 검은색 '조기'를 가슴에 달고 나타난 공무원 10여 명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23일 오후 2시가 되면서 산불로 희생된 나머지 진화대원 유가족들도 장례식장에 속속 도착했다. 숨진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모두 창녕군 소속으로 기간제 근로자다. 산불이 발생하면 현장에 투입돼 진화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매년 군에서 교육을 받아 산불예방 관리업무를 하거나 지자체 경계를 넘어 광역 진화대로 차출되기도 한다. 이번에 이들이 산청군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광역 진화 업무였다.
안치실에서 나온 진화대원 B(63) 씨의 딸이 복도 벽에 기대며 절규했다. 그는 연신 "아빠 미안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B 씨의 다른 유가족은 장례식장 식탁에 앉아 "내 새끼 어찌할꼬"라고 흐느꼈다. 유가족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흐느꼈고, 장례식장 복도에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한 맺힌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또 다른 진화대원 C(60) 씨의 유가족은 "개죽음"이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취재진에게 "시신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며 "다른 가족들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 내가 보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창녕군은 이번 산불로 순직한 A 씨 등 4명을 추모하기 위해 창녕읍 창녕군민체육관에 합동 분양소를 설치했다. 이날부터 오는 27일까지 애도 기간을 운영하며 각종 행사를 전면 중단해 고인들을 기리기로 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