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인류 경제 발전과 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공간이다. 세계를 연결하는 동맥으로 언제든 항행의 자유와 물류가 보장되어야 한다. 역사는 한 나라가 이 바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린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항해시대, 서방 해양강국들은 바다로 진출하며 국운이 융성했다. 16세기 유럽에서 막대한 세력을 떨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필자는 40여 년간 해군에 몸담아 바다를 지켰다. 전역 후에는 해양강국 구현을 기치로 해양산업총연합회장과 해양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다. 해양산업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해운이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과거 미국이 전시 상황에서 국적 상선대 부족으로 전쟁 물자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외국인 위주로 구성된 미국 상선대 선원들은 위험이 닥치자 모두 배를 떠났다. 이후 많은 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국적 상선대를 지원하며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국적 전략 상선대가 없다. 동원 선박이 지정되어 있으나, 임무를 수행할 국적 선원이 크게 부족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수출입의 대부분을 해상에 의존하는 무역 국가인 우리에게 전략 상선대의 존재는 국가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전략 물자를 수송할 해상수송로의 안전 확보와 이를 수행할 해군과 국적 상선대이다. 무엇보다 유능한 국적 선원을 안정적으로 양성하고 유지할 체계 마련이 시급하며, 이를 위한 범국가적 공감대 형성과 정책적 지원 역시 절실하다.
해상수송로의 안전과 관련해 우리는 오랜 기간 미국 주도의 국제 해양 질서에 의존해왔다. 냉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안보 체계에 무임승차한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국제 경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위협 인식이 낮아지면서 조선·해운 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 해군마저 위협을 느끼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해양 팽창 정책을 펼치는 중국의 영향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 해양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상황은 심각하다.
이처럼 위중한 상황 속에서 우리 해운산업이 당면한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해기사 인력 부족 현상은 2008년을 기점으로 심화되어, 2023년 기준 누적 부족 인원은 5007명에 달했으며, 2032년이 되면 8601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족한 인력을 동남아 등 외국인 선원으로 채우고 있지만,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숙련되면 근로 조건이 더 나은 유럽 선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국적 해운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은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최고의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인 한국해양대학교가 ‘글로컬대학30’ 선정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 유사시 국적 전략 상선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가관과 사명감을 갖춘 해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된 상선 운용을 위해서도 우수한 해기사 양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고가의 첨단 교육 훈련 설비를 갖추어야 하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히 한국해양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가 연합해 2025년 ‘글로컬대학30’ 선정에 ‘해양특성화대학’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배려와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언제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급히 전략 물자 수송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안보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부산시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시의 자존심이자 책무이다. 대한민국은 바다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해양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