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그날 이후 수시로 문자를 보냈다.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며 휴대폰을 열어보면 시시각각 뒤집고 또 뒤집히는 뉴스에 불안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언니야, 법이 왜 이래. 검찰은 또 왜 그래. 헌재는 믿을 수 있나. 그런데 언론은 왜 이러지. 그 때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란은 정리될 것이라고, 상식적인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계엄의 밤에 모두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른 송년회를 하다가 맨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에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속옷과 양말을 챙겨 하루아침에 계엄사 통제 대상이 된 직장으로 야밤 출근을 했다. 넉 달 가까이 지났지만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그사이 여객기가 추락하고 산불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일상은 회복되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도 재난이 됐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최종변론에서 국회 측 한 변호사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인용했다. ‘세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전에서 ‘제자리’는 ① 본래 있던 자리 ②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③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이다. 본래 있던 자리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하나가 원상 복귀라면 다른 하나는 옳고 바르다는 판단이 개입된다. 각각 사실과 당위의 영역이다.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리는 당연히 저마다 다르다. 여기에서 갈등이 생긴다.
탄핵심판은 비상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직에 있는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맞는지 살피고 그 결과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제자리 찾기’라고 할 만하다. 탄핵을 찬성하는 쪽은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파면만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하는 쪽은 복귀가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자 거대 야당의 횡포에 맞선 대국민 호소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노래 ‘풍경’ 속의 제자리는 이상향에 가까운 것 같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 노래가 실린 1986년작 음반 ‘푸른돛/사랑일기’를 소개하면서 가수가 이 앨범을 낼 당시 줄담배와 위스키에 기댈 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동화 같은 단어와 밝고 차분한 멜로디 밑에는 괴로움이 깔려있다고 썼다. “가사의 행간에는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다”는 글에 비춰보면 ‘제자리’를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입해볼 수 있겠다.
헌재의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갈등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 자체보다 선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어쩌면 더 큰 혼란이 닥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누구도 계엄이 선포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거꾸로 우리 사회의 다음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꺼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없는 희망이라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광장에는 이미 목소리들이 넘치게 모였다. 제각각의 시민들이 대통령 한 사람의 퇴장을 넘어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각 분야의 개혁 의제들을 외친다. 이른바 ‘사회대개혁’이다. 물론 음모론을 불씨로 차별와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차별과 혐오가 제자리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8년 만에 반복된 탄핵에서, 어떤 계절보다도 길었던 지난 겨울에서 하나도 배운 것이 없게 된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콘클라베’ 이야기다. 콘클라베는 추기경 108명이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에 갇힌 채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는 두 번의 연설이 투표에 파동을 일으킨다.
콘클라베 전날 선거 단장인 로렌스 추기경은 “하느님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의심 없는 확신은 통합과 관용의 적”이라고 강변한다. 두 번째는 마지막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베니테스 추기경이 하는 연설이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를 두고 “종교전쟁”을 말하는 테데스코 추기경에 맞서 “편을 가르는 대신 모든 남자와 여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교회는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교황청은 굴뚝 위에 흰 연기를 피워올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의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의 문이 열리기를, 이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늦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를, 모두가 일상을 되찾고 다음에 해야 할 일로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