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위기의 부산, 문화도시로 대전환

입력 : 2025-03-27 18: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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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제대로 된 문화 정체성·브랜드 구축 시급
싱가포르 문화예술 활용 사례서 배워야
독자적 공연 콘텐츠 개발, 관광 접목해야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동북아를 대표하는 환적항을 보유한 국제물류 중심지다. 하지만 부산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임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청년층 유출로 인해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 330만 명은 이미 무너졌고, 2024년 12월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3.9%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때 부산 경제를 떠받쳤던 제조업이 약화된 지 오래고,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현재 부산의 고용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으며,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대다수는 자영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 중심 경제 전략에서 벗어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관광’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전략 구축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도 보여주기식 개발과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일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시 경쟁력은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 정체성과 브랜드 구축에서 나온다.

부산과 같이 환적항을 가진 싱가포르는 중국 상하이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다. 물류 허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 경쟁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물류와 금융 중심도시에서 문화 콘텐츠와 관광을 강화해 ‘아시아 문화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는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준다. 특히 싱가포르 예술의 중심지인 ‘에스플러네이드’는 지역 및 국제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객들에게도 큰 매력을 발산한다. 싱가포르 최초의 공연예술 전문도서관을 비롯해 1600석의 콘서트홀과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등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무료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공연 전후로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부대시설은 방문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며, 건축물의 역사와 음향 시설 탐방을 위한 가이드 투어도 마련되어 있다. 도시의 문화 콘텐츠에 관광을 결합해 도시 경쟁력을 높인 성공적인 모델이다. 적극적인 정부 주도 예술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물류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부산이 환적항으로 위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5년에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다. 당시 일본의 대표 무역항이 지진 피해로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부산항이 고베항을 대체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핵심 항만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행운은 노력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의 상하이항, 닝보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부산항 환적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환적항이라는 물류 허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싱가포르처럼 문화·관광을 융합하는 도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부산시는 부산의 위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예술계 예산 또한 정치적 홍보나 이벤트성 행사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6000억 원에 가까운 시민 혈세를 낭비했고, 가덕도 신공항, 북항 재개발, 부울경 메가시티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부산 시민의 삶을 위해 어떻게 운영할지 그 실행 계획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다. 산업은행 본사 이전의 실질적 경제 유발 효과도 꼼꼼하게 따져 검토해야 한다.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예산을 쏟아붓기보다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클래식 전용홀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지역 문화예술회관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독자적 공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문 인력인 예술단을 부산시가 직접 고용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제작극장이다. 실기 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는 지역 대학의 교육도 콘텐츠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개편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전문적으로 길러내고, 지역 내 공연장과 연계한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투자 대비 수입이 극도로 적은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적 삶을 꾸릴 수 있는 주거 지원 정책과 자녀 교육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의 많은 예술가나 예술단체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고, 우수한 예술가들조차 예술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수도권이나 해외 공연예술 단체에 의존하는 일회성 문화 소비도시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설물만 넓히고 짓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예술가들을 직접 고용하는 데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부산 살리기’는 더 이상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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