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입력 : 2025-04-22 18:05:27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온난화, 지표면 온도 높여 대류 강화
건조한 날씨·강한 바람이 산불 확산
생존과 직결된 문제 일상 속 실천부터

경북, 경남, 울산 지역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이번 산불은 규모와 피해 면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산 전체로 퍼졌다.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지만, 결국 불길을 잡은 건 잦아든 바람과 내린 비 덕분이었다. 불의 시작은 사람의 실수였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달라진 기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예년보다 훨씬 더 건조했던 날씨는 불을 키운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요즘 날씨는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단순히 계절이 어긋나는 정도가 아니라, 날씨 자체가 더 극단적이고 강렬해졌다. 이런 날씨의 변화는 지구온난화와 관계가 있을까? 단일 사건을 기후 변화와 직접 연결 짓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기본적인 물리 현상만으로도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가 무엇 때문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구 대기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로 이루어져 있고, 이 공기는 온도나 압력 차이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가 아는 고체의 움직임과는 아주 다르다. 고체는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지만, 공기처럼 이어진 연속체는 한쪽에서 변화가 생기면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도 퍼져나간다. 대기의 움직임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현상이 바로 ‘대류’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가 라면을 끓일 때의 냄비 속 물이다. 냄비 바닥에서 뜨거워진 물은 가벼워져서 위로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차가운 물은 아래로 내려온다. 이처럼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일어나는 순환 운동을 ‘대류’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며 ‘레일리-버나드 대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류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많은 셀로 구성되어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특히 육각형 모양의 패턴이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집이나 제주도의 주상절리처럼,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는 육각형 구조들도 이와 비슷한 물리적 원리와 관련이 있다.

대류의 중요한 특징은, 어느 한 지역에서 운동이 강해지면 다른 지역도 함께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연속된 물질에서는 한 쪽만 유별나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냄비의 한쪽만 더 뜨겁게 해도, 그 영향은 전체로 퍼져나간다.

대기 속 대류는 여기에 지구 자전, 수증기, 열 교환까지 더해지며 훨씬 복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어느 지역에서 공기가 강하게 상승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그에 반대되는 하강 운동이 강하게 형성된다.

지구온난화는 지표면의 온도를 높인다. 따뜻해진 땅 위의 공기는 가벼워져 더 빨리 위로 올라가고, 이는 대류를 전반적으로 강화한다. 또한,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는데, 이 수증기가 상승하면서 차가운 상층에서 물방울로 변할 때 주변에 열을 방출한다. 이 열은 다시 상승을 더욱 가속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강한 폭우가 일어나고 지역적으로는 홍수가 일어날 수 있다.

어딘가에서 상승 운동이 강화되면, 그 주변에는 반드시 하강 운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하강 운동이 일어나는 지역은 구름이 거의 없고, 날씨는 더욱 건조해지게 된다. 산불은 이렇게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퍼진다. 시작은 인간의 실수였지만, 이후의 확산은 기후 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단정 짓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인 물리 원리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만약 지금처럼 한반도의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비가 오는 날조차도 극단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예전처럼 보슬보슬 내리는 장맛비 대신,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폭우가 홍수를 일으키고, 또 다른 형태의 재난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상기후’라는 이름 아래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을 바꾸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과학 지식을 넘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 속도에 비해 우리가 대처하는 속도는 여전히 느려 보인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 정책을 세우고, 산불 같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거창한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에서, 정책의 작은 조각들에서, 교육과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을 조금씩 바꿔 갈 수 있다. 지금의 이 변화는 단지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신호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