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카지노'를 꿈꾸는 부산시민은 없다 [이상윤의 세상톡톡]

입력 : 2025-04-22 1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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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쿡 찔러 본 복합리조트 꿈
카지노 논란에 번번이 공론만 거듭
그 새 국내외 곳곳 복합리조트 '붐'

청사진 무산 거듭에 무력해진 부산
상공계 중심으로 유치 논의 재시동
발전 동력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10년 전 세계 최대 카지노 그룹 ‘라스베이거스 샌즈’(이하 샌즈)는 부산시장실을 찾아와 공공연하게 이런 소리를 했다.

“지구상에서 부산에 5조 원 이상 투자를 곧장 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을 것입니다.”

샌즈 측의 이 말은 자신감을 과장하는 일종의 블러핑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곧이어 제시한 복합리조트 카드는 부산시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마이스와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엮어 제시한 북항재개발 부지의 밑그림은 당장 부산을 국제적 컨벤션 도시로 띄울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샌즈 측이 개발한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가 전 세계 관광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구심력까지 떠올린 부산시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도 잠시. 곧장 복합리조트의 핵심 시설로 꼽힌 오픈카지노가 논란에 휩싸였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사회적 부작용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샌즈 측이 오픈카지노 대신 자격을 제한하는 형태의 세미오픈카지노를 제시했음에도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샌즈가 입맛을 다시고 물러간 지 10년. 그 사이 엠지엠 등 다른 카지노 그룹들이 샌즈의 뒤를 이어 다녀갔을 뿐 북항재개발 부지는 아직도 대부분 잡초 무성한 공터로 남아 있다.

북항재개발의 뿌리는 노무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북항의 기능을 부산 신항으로 대거 옮기고 난 빈 자리를 개발해 부산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었던 문재인 정권은 그럼 이 부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 정권 시절 국무위원을 역임한 부산의 한 인사는 퇴임 때쯤 사석에서 북항재개발 랜드마크 부지에 대해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는 꿈도 꾸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카지노는 입밖에 낼 수조차 없으니 다른 친수공간 활용 방안이나 서둘러 모색하라는 권고도 곁들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이런 말을 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부산과 비슷한 시기 복합리조트 사업 추진을 전국 곳곳에 타진하고 나선 일본이 변수로 부각했다.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부러워하던 일본 아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4000만 시대를 열겠다며 복합리조트를 국가사업으로 내걸자 오사카를 비롯해 전국 7곳에서 너도나도 유치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일본은 복합리조트 사업 관련 비리가 터지는 바람에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등 큰 진통을 겪었으나 결국 오사카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은 돛을 달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인천 영종도에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가 공식 개장했다. 부산 북항에서 벌어진 만큼의 복합리조트에 대한 거부감이나 정부 차원의 외면이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인스파이어가 개장 1년도 안 돼 천문학적 적자로 인해 사모펀드로 넘어가고 후속 투자 여부가 불확실해졌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부산의 입장에선 그나마 첫 발이라도 내디딘 인천의 사례가 부러운 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게 사그라드는 듯했던 복합리조트에 대한 논의에 부산 상공계가 또다시 기름을 붓고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 토론회까지 열면서 여론 환기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혹자는 왜 사행성 사업을 포함하고 있는 복합리조트에 대해 부산지역이 끈질기게 미련을 갖고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비아냥을 받는 부산이 ‘노인과 카지노’가 될 판이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에라도 기대어 텅빈 부산 북항재개발 부지를 어떻게든 채우고 부산의 발전 동력으로 삼아보려 했던 부산시민들의 열망이 처참하게 좌절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대통령이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며 화려한 청사진을 뿌리고 갔지만 원내 1당의 무관심 혹은 배제로 인해 여지껏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조기대선을 맞아 다시 장밋빛 공약이 난무하기 시작한 게 그나마 위안일 정도다.

다행히 지난해 말 부산시는 북항재개발 랜드마크 부지에 지적재산권 기반 복합 콤플렉스 개발을 위한 대규모 외자 유치 방안을 발표하기는 했다. 시민들은 부산항만공사와의 의견 차이로 아직 불확실성의 범주에 속한 이 계획에마저도 조그만 희망을 건다. 시민들은 이 계획이 숱하게 청사진만 뿌렸다가 흐지부지 발을 뺀 부산지역 기존 사업들의 재판이 되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노인과 카지노’를 애써 꿈꾸는 부산시민은 없다. 마리나베이샌즈를 딛고 선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보며 북항에 벤치마킹이라도 하고 싶은 부산시민만 있을 뿐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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