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교황의 와인

입력 : 2025-04-22 18: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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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현지 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간 재임 내내 검소하고 청빈한 면모를 보였다. 교황은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했는데, 와인만큼은 즐겼다. 교황은 2013년 선출 뒤 추기경들과 첫 만남에서 고령인 자신을 오래된 와인에 비유하는 등 와인 사랑이 각별했다. 교황이 사랑한 와인은 모국 아르헨티나의 ‘알타 비스타 클래식 토론테스’였다. 산뜻하고 복숭아와 살구 향이 나는 화이트 와인이다. ‘교황의 와인’이라고 해서 엄청 비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가격은 1만~2만 원대.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선하고 향긋한 토론테스의 풍미는 검소함 속에 더욱 빛나는 교황의 모습과 닮았다.

원래 교황들이 즐겨 마시던 와인은 프랑스 남부 론 지방에서 생산되는 ‘샤토네프 뒤 파프’(교황의 새로운 성)였다. ‘샤토네프 뒤 파프’는 14세기 아비뇽에 유폐됐던 교황의 여름 별장이 있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 이 와인 가격은 20만~30만 원대에 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의 와인’마저 소박하게 바꾼 셈이다.

‘가난한 이들의 성자’답게 교황은 소박한 행보를 보였다. 즉위 이래 역대 교황이 기거한 호화로운 사도궁 관저를 두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주했다. 교황 전용 방탄차를 타지 않고, 이탈리아 국민차인 ‘피아트’를 애용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명품 시계로 구설에 올랐던 것과 달리, 50달러짜리 손목시계를 찼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는 그의 뜻에 따라 기아차 ‘쏘울’이 한국 내 전용 차량으로 선택됐다. 그는 방한 내내 교황의 상징인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20년간 착용한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낡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고, 이동 중에는 오래된 가죽 가방을 직접 들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교황의 장례식 역시 소박하게 치러진다. 교황청은 21일 교황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교황이 별다른 장식 없이 바티칸 밖 성당 지하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묘비에도 특별한 장식 없이, ‘프란치스쿠스’(Franciscus·프란치스코의 라틴어명)만 새겨 달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바티칸 밖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교황을 안치하는 관도 삼중 관에서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1개로 줄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빈자의 성자’다웠다. 교황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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