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람, 밥 딜런

입력 : 2025-04-23 17: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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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밥 딜런 전기 '컴플리트 언노운'
노래로만 평가할 수 없는 20대
샬라메의 실감 연기, 몰입 도와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한 편의 시(詩)가 노래가 된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기타 소리에 맞춰 높이 멀리 날아올라 나에게로 온다. 노래가 얼마나 강렬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우리는 밥 딜런을 통해 보았다. 세상과 불화하는 듯한 표정. 아무렇게나 내뱉는 듯한 무심한 말들은 한 시대와 만나 예술이 된다. 1961년, 스무 살이 된 밥 딜런은 자신의 음악적 우상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미네소타를 떠나 뉴욕에 입성한다. 희귀 유전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그를 위해 밥 딜런이 수줍게 노래한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의 전기 영화다. 슈퍼스타인 그의 이야기와 노래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밥 딜런의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의 노래가 아득해지고, 어느새 그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 멀리 달아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음악적 행보와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의 감정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다 결국 밥 딜런이라는 인물이 내가 아는 그가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이면서 영화 제목이기도 한 ‘컴플리트 언노운’처럼 밥 딜런은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람’임을 확인한다.

뉴욕에 도착한 밥 딜런은 노래하기 위해 클럽을 전전한다. 드디어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 시작하자 객석이 고요해진다. 기존의 음악들과는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적인 음악은 슈퍼스타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평단과 대중이 열광한다. 이때 밥 딜런의 노래 실력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없다. 당시는 대중문화의 격변기였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으며 선두에는 청년들과 대중문화가 있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와의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욕망했고, 미술, 음악, 영화 등의 대중문화는 저항적 기조를 담아낸다. 정치적으로는 핵전쟁 공포와 베트남전으로 촉발된 반전 운동, 인권 문제, 페미니즘 논의로 관심이 확장된다. 밥 딜런은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사회참여적 음악을 발매하는 등 그 누구보다 시대와 깊이 조우한다. 그러면서도 “괴로운 시대, 사랑할 사람을 찾으라고” 열창한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의 20대 초반 시절을 조명한다. 그러니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밥 딜런이 음악을 시작하는 시기부터 음악적 변화를 꾀하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공연까지를 다룬다. 지금까지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들은 대체로 인물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대비하며, 그의 업적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젊은 날의 밥 딜런의 모습, 음악을 향한 고민과 변화,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에 중심에 두며 갈등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때 밥 딜런을 노래하게 한 인물이 우디 거스리였다면, 음악적 성장에는 포크송 가수로 유명한 피트 시거와 조안 바에즈가 있다. 밥 딜런의 뮤즈인 첫사랑 실비는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다. 밥 딜런이 만나고 관계 맺은 사람들 덕분에 그의 음악 또한 빛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음유시인,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밥 딜런의 이야기는 영화의 오프닝과 같이 우디 거스리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 엔딩은 우디 거스리를 통해 시작된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인생 2막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밥 딜런을 연기한 배우에 있다. 티모시 샬라메는 밥 딜런이 되기 위해 무려 5년 동안 준비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특유의 게슴츠레한 눈빛은 밥 딜런 그 자체이며, 읊조리고 숨을 삼키는 듯한 창법, 기타 연주와 노래는 모두 그가 직접 소화하고 있음에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마치 밥 딜런의 젊은 날과 마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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