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 행사에서 “오늘은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칭하며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모든 국가의 대미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고 ‘최악의 침해국’(대미 무역 흑자국)을 지목해 중국에 34%를 시작으로, 영국 10%, 유럽연합(EU) 20%, 한국 25%, 일본 24%, 인도 26%, 태국 36%, 베트남 46% 등 차등 관세를 책정했다. 이와 함께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기본 관세 10%만을 부과한 영국·호주에 더해 한국·일본·인도를 지정하고 상호 관세 유예 기간인 90일 사이에 미국과의 협상을 끝낼 것을 종용했다. 이들 5개국 중 영국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 국가이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통해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며, 두 나라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존재다. 인도와 호주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비공식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핵심 국가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안보와 통상을 연계해 유리한 합의를 빠르게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등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세계 각국이 대응에 분주한 가운데, 미국의 목적이 단순한 무역 재균형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를 체계적으로 붕괴시키려는 것으로 인식하는 중국은 보복 관세는 물론 희토류의 수출 통제 조치를 하는 등 미국과 관세 전쟁에 나섰다. 결국, 지난 17일 백악관은 중국 관세율을 최대 245%까지 인상했다. 이에 양대 경제 대국인 미중 두 국가 간의 교역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우선 협상 대상국’ 중 가장 먼저 미국과 협상에 나선 나라는 일본이다. 이미 일본은 트럼프 2.0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발 빠르게 미일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를 얻고자 했으나, 결국 24%의 관세를 부과받고 말았다. 이후 일본은 관세와 방위비를 별도로 다루면서 장기간에 걸쳐 협상을 추진하는 이른바 분리·장기 협상전략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1차 협상에 예고도 없이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해 협상을 진행하고자 했다. 상반되는 전략으로 협상이 탐색전으로 끝난 후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우리 방위비는 일본이 주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면서, 일본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뒤인 19일 백악관은 일본 측 관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에게 트럼프의 상징인 빨간색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씌운 사진을 공개했다. ‘게임의 규칙’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일본과 국제사회에 재차 경고한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일본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모습은 리더십 결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과 다르게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관세가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을 ‘최대한 침해국’으로 상정해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우선 협상 대상국’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제안에 따라 이번 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2+2 통상협의’가 시작된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추진하는 관세 협의이다. 한국 측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참여한다. 한국의 경제·통상 구조는 물론 안보 틀까지도 흔들 수 있는 미국과의 협의가 국가적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의 지적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머니 머신 한국, 돈 한 푼 안 내”라는 인식에 근거해 방위비와 관세를 혼합시킨 ‘원스톱 쇼핑 협상’을 추진하며, 일본과의 협상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가시적 성과를 손에 넣고자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본과의 협상 때처럼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 또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이어진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을 미국이 이용하거나, 더 나아가 주한미군의 철수와 북한과의 교섭을 협상 카드로 꺼낼 수도 있다. 따라서 관세가 상징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로부터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일본처럼 안보와 관세를 분리하고 협상을 장기화하면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6월 3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보다 전략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