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입력 : 2025-05-18 17: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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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최근 카뮈 작품들 다시 읽어
부조리와 반항으로 귀결돼
실제 세상도 부조리로 가득
연대로 반항, 인간 존재 이유

나는 청소년기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주인공 뫼르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일본어를 거친 중역본의 조악한 번역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을 이해하기에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무척 재미없는 소설로 기억한다.

최근 카뮈의 책을 다시 읽었다.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 에세이 〈시지프 신화〉와 〈반항하는 인간〉, 그리고 희곡 〈계엄령〉까지, 결국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와 반항으로 귀결되었다. 카뮈의 부조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전후 유럽 사회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페스트〉를 다시 읽으며,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페스트는 어떤 형태로든 수시로 준동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감염병, 전쟁, 계엄령, 혹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5월 연휴 나들잇길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대형트럭이 가족이 탄 승용차를 추돌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튈 만큼 차는 부서졌고, 충격으로 튕겨 나간 차가 다시 앞 차를 추돌했다. 봄날 연휴 나들이에 나선 그 가족은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전시 혹은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아닌데 계엄령을 선포하는 정부, 사회를 지탱해야 할 의료와 법률이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이웃집 아이가 소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이들은 어떤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조리하다. 애초 인생에 정해진 의미란 없고, 세상에는 질서나 인과 관계가 없는 것 투성이며, 때때로 내 의지와 무관한 결과를 맞닥뜨린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 〈이방인〉의 구절처럼, 우리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인생에 규칙은 없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세계도 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삶도 부조리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는 힘들게 정상으로 밀어 올린 바위가 순식간에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정상을 향해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부조리 앞에서, 그는 묵묵히 들판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위를 밀어 올린다.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지프와 통장이 금방 텅 빌 것을 알면서도 통장을 채우고자 출근하는 직장인은 무엇이 다를까.

이토록 부조리한 삶의 형벌 앞에서 시지프와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카뮈는 부조리에 반항하라고 조언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혐오하거나 무기력하게 굴복하지 말기를, 미래에 나아질 거란 막연한 희망에 기대거나 절대자의 구원에 호소하지 말기를, 카뮈는 우리에게 권한다.

소설 〈페스트〉의 감염병은 카뮈가 반항하려고 한 부조리의 은유였다. 페스트 이전 오랑 시민의 삶은 주중 돈벌이와 주말 오락이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이었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 감염병에 맞서 시민은 ‘보건대’를 조직한다. 외지인 타루와 의사 리유를 중심으로 시작한 보건대는 시청 공무원 그랑,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판사 오통 등이 합류하여 페스트라고 하는 공동의 적에 맞서 연대하며 반항한다.

카뮈가 말한 반항은 자유이고 열정이다. 열정이 있는 이는 자유롭고, 자유인은 부조리한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한다. 반항은 고립되지 않으며 이웃이 있다. 내가 반항하는 순간, 반항하는 다른 내가 모여 우리가 된다. 공감을 통한 연대는 사피엔스의 본능이기에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이 있을 때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선의를 지닌 개인이 다른 개인과 연대하며 부조리에 반항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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