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는 부산에서 항공거리로 약 9320km 떨어져 있다. 직항편은 없으며, 주로 인천을 경유해 파리, 암스테르담 등을 통해 이동한다. 시차는 8시간이다. 이 먼 유럽의 내륙 도시를 부산항 관계자들이 찾는 이유는 글로벌 1위 선사 MSC가 있기 때문이다.
MSC는 작년 부산항에서 400만TEU 이상의 물량을 처리했다. 이는 부산항 전체 2440만TEU의 16%가 조금 넘는 규모이다. 2024년 신항 7개 터미널 중 연간 400만TEU 이상을 단독으로 처리한 터미널은 한 곳뿐이다. 이처럼 한 선사가 단일 터미널 이상에 해당하는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MSC의 영향력은 단일 터미널 수준을 넘는다.
MSC는 스위스에 위치하고 있지만 창업자인 잔루이지 아폰테(Gianluigi Aponte)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1970년대 중고 선박 한 척으로 시작해 반세기 만에 900척 이상 선박을 운영하는 글로벌 1위 선사로 성장했다. 현재는 창업자의 아들 디에고 아폰테(Diego Aponte)가 그룹을 이끌고 있고, 머스크 출신 소렌 토프트(Soren Toft)가 CEO로 1M 체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MSC는 선복 확보와 함께 터미널 투자에도 공격적이다. 지난 3월 MSC는 미국계 자산운영사 블랙록과 함께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인 CK 허치슨 포트 홀딩스 인수에 나섰다. 인수 주체는 MSC 산하 터미널 전문 투자 및 운영사 TIL(Terminal Investment Limited)이다.
TIL은 MSC의 안정적인 기항을 위해 주요 항만에 지분을 투자하고 자가 터미널(Asset Terminal)로 운영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CK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전 세계 23개국 43개 항만 사업을 가지고 있어 해운·항만업계에서는 인수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TIL은 부산항 신항에도 이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허치슨은 부산항 북항과 광양항에서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각국 당국의 승인 절차가 진행돼야 하겠지만 이번 인수가 예정대로 마무리되면 TIL은 부산항 신항, 북항 그리고 광양항 등 한국 주요 컨테이너 항만에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하나의 글로벌 선사가 한국 내 주요 거점 3곳의 터미널 운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산항과 MSC의 관계가 단순한 공급자-이용자 관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부산항은 MSC에게 동북아시아의 환적 거점이자 전략적 허브항이다. 다만 부산항이 선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시 기항률, 환적 효율성 등을 제공하지 못하면 선사로서는 경쟁 항만으로 기항을 변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SC는 곧 1000척 운항 시대로의 진입을 예고했다. 이는 해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이다. 부산의 외곽 순환도로에서 노란색 컨테이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MSC 컨테이너다. 제네바에 본사를 둔 이유는 세제 혜택, 법인 안정성, 국제 기구들의 밀집 등 복합 요인이 있을 것이다. 부산과 부산항은 MSC를 위시한 글로벌 선사들의 아시아 물류 거점으로 지금까지의 역할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2025년 5월 현재, 글로벌 해운·항만업계는 트럼프발 미중 관세 갈등으로 높은 불확실성의 파고에 직면하고 있다. 양국간 긴장이 전 세계 선박 스케줄과 물동량 흐름을 변화시키며 극동 환적항인 부산항에도 큰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1M은 물론 제미니 얼라이언스, 프리미엄 얼라이언스, 디 얼라이언스 역시 부산항 기항 미주 노선들에 변경을 예고했다가 재검토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글로벌 선사들은 갈등 국면에서도 탄력적인 기항 체계와 비용 경쟁력이 확보된 환적 거점항을 찾는다. 부산항이 지속적으로 ‘바로 그 항만’이 될 것인지가 과제다.
선사들은 선박의 빠른 대형화 추세에도 예전 규모 선박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산항의 각 단위 터미널의 보완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1M급 대형 선사·터미널 투자, 운영사의 대두와 글로벌 무역 구조의 근원적인 변화가 예견되는 시대이다. 부산항은 단순 환적항을 넘어 선사의 전략적 파트너 항만으로 성장할 것인가. 해운 시황의 본질이 변화무쌍함과 불확실성에 있지만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산항의 성공 전략은 무엇인가. 24시간 이상의 비행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가서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고, 협의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부산항이 다음 시대의 물류 네트워크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5년 지금은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다.